삼성은 다른 대기업이 잇따라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는데도 정기공채를 고수하고 있다. 삼성은 SK그룹이 2022년부터는 대졸 정기공채를 없애고 수시채용으로만 직원을 뽑겠다고 발표한 지난달에도 “현재까지 대졸 신입사원에 대한 수시 채용은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1957년부터 정기공채로 신입사원을 선발해온 삼성에서도 “이제는 수시채용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없진 않다. 삼성전자 정기 공채에선 반도체, 스마트폰 등 인기 사업부가 아닌 곳에 발령난 신입사원들의 근로 의욕과 성취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비전자 계열사 관계자는 “수시로 사람을 선발하면 지금보다는 더 취업자와 회사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삼성이 수시채용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삼성 공채’가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다. 삼성 입사시험을 ‘공정한 경쟁의 상징’ ‘계층 이동 사다리’ 등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 인사팀장 출신인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는 “정기공채는 ‘미생’인 대학 졸업자에게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기업 동량으로 키우는 일종의 사회공헌활동”이라며 “사회 전체가 주목하는 기업인 삼성으로선 공채를 없애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시채용 전환=채용 인원 축소’라는 세간의 인식도 삼성이 공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가 앞장서서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정기공채 폐지’란 말을 꺼내기 힘들다는 얘기다.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랜 기간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있다는 점도 정부 눈치를 보게 되는 요인 중 하나다.
삼성이 ‘채용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어 다른 기업보다 수시 전환에 소극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 공채를 준비하는 취준생 중 상당수는 직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학점과 토익, 직무적성검사 성적이 좋아도 직무적합성이 떨어지면 면접 통과가 어렵다. 삼성 취준생이 일찌감치 전문성을 쌓는 이유다. 입사 후 1년 이상 훈련만 받는 일반적인 정기공채 합격자들과는 ‘질’적인 차이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 경력으로 영입하면 된다. 삼성은 경력채용 시장의 ‘종착역’으로 불릴 만큼 실력을 갖춘 경력자의 지원이 많은 기업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삼성이 아쉬워하는 인재는 인공지능(AI) 전문가, S급 소프트웨어 개발자 정도”라며 “범용 인재는 공채로, 전문가는 경력으로 수급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도 우수 인적 자원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충분히 충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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