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여성전용 카드를 시작으로 카드업계가 '예쁜 카드'를 만드는 디자인 경쟁에 나선 지 20년가량이 됐다. 하지만 제아무리 디자인이 독특한 신용카드라고 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숫자들이 있다. 16자리의 카드번호와 4자리의 유효기간, 부정사용을 막기 위한 3자리의 CVC코드다.
올해는 이 가운데 카드번호와 CVC를 삭제한 '초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카드가 처음 등장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하나카드는 카드번호와 CVC를 표기하지 않는 '클리어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신상품 '멀티 시리즈'(사진)를 출시할 예정이다. 하나카드 측은 "클리어 옵션을 통해 세련된 카드 디자인을 구현하고 정보 유출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카드번호와 CVC는 필요한 경우 스마트폰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카드번호와 CVC는 지우면서 왜 유효기간은 남겨둔 것일까.
지난달 하나카드는 이들 정보를 표기하지 않고 실물 신용카드를 발급해도 되는지를 금융위원회에 질의했다. 금융위는 관련 규정을 확인한 다음 "소비자가 원하면 카드번호와 CVC는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보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실물카드 표면에 카드번호, CVC 등을 기재하는 것과 관련해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신용카드 개인회원 표준약관'에는 유효기간을 표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유효기간 만료가 다가올 때 소비자가 제때 갱신발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이번 유권해석을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의 사례로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유효기간만 남겨놓을 필요가 있냐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간편결제 이용이 늘면서 굳이 모든 정보를 실물카드에 적을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다"며 "카드 분실·도난 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만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삼성카드도 조만간 하나카드와 비슷한 콘셉트의 새 디자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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