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씨(30)는 지난해 아나운서 학원을 등록했다. 아나운서 지망생이라서가 아니다. 은행 채용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하면서 전문가의 코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약 두 달간 발성부터 발음, 목소리 톤, 표정, 자세 등을 교정하는 데 200만원 가까이 들었다. 김씨는 “아무리 좋은 스펙을 갖춰도 면접에서 이를 잘 전달하지 못하면 허사”라고 덧붙였다.
수시채용 바람이 불면서 취업준비생들의 전략도 바뀌고 있다. 면접의 중요성이 커져 스피치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가 하면 현직자 못지않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추기 위해 ‘논문 스터디’를 하기도 한다. 현직 인맥을 쌓을 수 있는 대학의 학회와 동아리엔 지원자가 넘쳐난다.
한국경제신문이 제조·유통·금융·바이오 업종의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90%가 ‘수시채용으로 바뀌면서 면접 전형을 강화했다’고 답했다. 공개채용에서 ‘거름망’ 역할을 했던 서류 전형, 필기시험의 비중이 줄어든 대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지원자의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취준생들이 스피치 학원으로 몰리는 배경이다. 직무와 관련된 스펙은 기본이고, 면접에서 강력한 인상을 줘야 합격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물류 계열사 임원은 “면접은 결국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라며 “면접에서 심사위원들과 적극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지원자가 기억에 남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직무와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당락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면서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인공지능(AI) 스터디’ ‘2차전지 스터디’ 등을 함께 꾸려보자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의 채용공고가 뜨면 지원자들이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매주 배터리·화학 논문을 한 편씩 읽으며 공부하는 식이다.
설문에 참여한 기업들은 ‘성실성·책임감’(18%) ‘입사 의지와 열정’(9%) ‘가치관과 비전’(7%) 등 지원자의 성격과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답했다. 국내 한 투자은행(IB)에 합격한 최모씨(28)는 “기업공개(IPO) 직무는 다양한 기업을 만나고 계약을 따내는 영업력, 강도 높은 업무를 버틸 수 있는 근성 등이 중요하다”며 “대외활동 경력을 소개할 때도 국토대장정, 해외 거주 경험 등을 앞세워 이 직무를 수행하기 적합한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학회·동아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서울대의 한 주식투자학회는 면접에서 기존 구성원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입 절차가 까다롭다. 학회에서 활동하면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업계에 진출한 선배들을 통해 미리 채용 추천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이선아/공태윤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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