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쓰던 회사 이름을 바꿨다. 회사를 상징하는 색과 로고도 갈아치웠다. 회사명에서 ‘자동차’를 뺀 기아 얘기다. 변화에는 불편함과 비용이 뒤따른다. 무언가를 바꿨다가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지난해 4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기아가 왜 이런 모험을 감행했을까.
변화를 주도한 송호성 사장(사진)의 답은 간단했다. 기아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회사가 될 것이고, 이를 위해 스스로를 먼저 바꿨다는 설명이다. 송 사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시대에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무버’로 거듭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회사 이름을 바꾸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동차를 제조하는 회사에 머물면 안 된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이는 모바일 기기로 바뀔 것입니다. 자동차와 가정 및 회사가 데이터로 연결되고, 외부 통신을 통해 자동차 성능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회사 이름이든 정체성이든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나요.
“당장 전기차 비중이 확 늘어납니다. 다음달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첫 전기차(코드명 CV)가 공개됩니다. 전기차 생산량을 2030년 88만 대로 늘릴 계획입니다. 전용 플랫폼 전기차 이름은 EV1~9입니다. 전기차를 의미하는 일반명사인 EV를 차 이름에 붙인 것은 기아가 이 시장을 선도하고 대표하겠다는 의지에서입니다. 2023년엔 내비게이션뿐만 아니라 차량의 각종 기능까지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자동차를 내놓을 것입니다.”
▷현대차 아이오닉 같은 전기차 전용 브랜드를 내놓을 계획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2030년까지 전용 플랫폼 전기차를 7종, 기존 모델에서 파생한 전기차를 4종 내놓을 계획입니다. 회사 중심축이 전기차로 옮겨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별도 브랜드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아만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입니다. 지금 판매되는 차량은 고객의 필요나 목적에 100% 맞지 않습니다. DHL과 UPS 같은 글로벌 물류회사도 일반 차를 사서 직접 개조해서 씁니다. PBV는 스케이드보드 같은 플랫폼 위에 다양한 몸체를 얹는 형식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약국, 편의점, 식당, 서점 등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더해지면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기아가 PBV 시장을 정조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아만큼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동차 회사는 없습니다. 기아는 이미 일종의 목적 기반 차량인 군수차량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장 취임 후 광주 군수차량 공장을 방문한 것도 PBV 생태계를 점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24~2025년부터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PBV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2030년 기아의 글로벌 판매량을 400만 대(지난해 약 260만 대)로 늘리는 게 목표인데요. 이와 별도로 PBV 100만 대를 생산할 것입니다. 이 시장에서 세계 1등을 하겠습니다.”
미래 계획을 거침없이 밝히는 송 사장에게 다소 아플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중국 시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지막 남은 과제입니다. 올해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간 중국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기아는 중국에 특화된 제품을 많이 내놨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렴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앞으로는 선진 시장용 상품을 중국에 집중 출시할 것입니다. 인센티브 의존도를 줄이고, 판매가격을 높일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아는 좋은 차 브랜드’라는 인식을 굳힐 것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브랜드 지향점을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습니까.
“기아는 보다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입니다. 우리의 핵심 고객층은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디자인부터 내부 기기까지 젊고 독창적인 고객에게 맞춰 바꿀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미래차 시대가 오면 고용인력이 줄어들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노사 모두 결국 미래차 시대가 올 것이고,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두고 대화해야 합니다. 고용안정 등을 위해 무엇을 할지 올해 본격적으로 대화에 나서겠습니다.”
▷현대차나 기아가 전기차 배터리를 직접 생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배터리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자동차 공장만큼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룹 차원의 전략 방향에 맞춰 결정할 문제입니다.”
▷텔루라이드를 국내에 들여와달라는 요구도 많습니다.
“텔루라이드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차량입니다. 국내에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모하비와 쏘렌토 등 국내에 적합한 차량이 이미 있습니다.”
■ 송호성 사장은
△1962년 전북 전주 출생
△전주고, 연세대 불어불문과 졸업
△1988년 현대자동차 입사
△2007년 기아 프랑스판매법인장
△2017년 기아 사업관리본부장
△2020년 기아 대표이사 사장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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