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인증 남산스퀘어 빌딩, 몸값 3250억 → 5050억 수직상승

입력 2021-02-03 16:55   수정 2021-02-14 15:17

지난해 3월 서울 충무로 남산스퀘어(옛 극동빌딩)는 이지스자산운용과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컨소시엄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매각 초기만 해도 “도심에서 비껴난 비핵심 입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남산스퀘어의 매각가는 5050억원, 3.3㎡(평)당 가격은 2200만원으로 동급 오피스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민연금 차액만 1800억원 올려
3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남산스퀘어의 흥행 비결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민연금은 2009년 남산스퀘어를 인수한 뒤 수도, 전력 설비 등을 개보수했다. 2011년엔 지금은 세계 부동산 투자의 표준이 된 친환경 인증제도 리드(LEED) 골드 등급까지 받았다. 빌딩을 사들인 KKR 측은 “남산스퀘어의 친환경성이 인수의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뜻밖의 흥행’으로 매도자인 국민연금은 1800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남산스퀘어는 대체투자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ESG 투자의 일면을 보여준다. 글로벌 운용사부터 초대형 연기금에 이르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기업 선정에서 밸류업까지 모든 과정에 ESG를 고려하면서 대체투자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올해 기관투자가가 투자의사결정에 ESG를 고려하는 자금 규모는 지난해 말 45조달러(약 5경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23조달러, 2018년 31조달러에서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양새다. 이 가운데 주식, 채권을 제외한 대체투자시장 비중은 13~1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약 1900조원)의 세 배가 넘는 60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ESG를 주제로 대체투자시장에 흐르고 있는 셈이다.

자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탄소중립’ 등 ESG의 핵심 과제를 주도하는 기업이나 자산군에 돈이 몰리고 있다. SK그룹은 미국 수소에너지 업체 플러그파워에 1조6000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중국 지리차와 수천억원 규모의 수소산업 투자 펀드 조성에 나섰다. 국내 굴지의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와 스카이레이크는 수천억원을 들여 각각 SK케미칼 바이오에너지사업부(바이오디젤), 두산솔루스(2차전지용 동박)를 인수하기도 했다.
부동산시장에도 ESG 바람


오피스, 물류센터 등 부동산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나 연기금 등 부동산업계의 큰손들은 리드와 같은 친환경 인증을 투자 기준에 포함하며 포트폴리오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캐나다 부동산·인프라 전문 운용사 브룩필드는 3~4년 전부터 신규 부동산 개발건 전부를 리드 골드 등급 이상으로 짓고 있다. 이 회사는 2019년 브라질에 5400㎞ 길이의 전력 송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에 투자하면서 송전선이 공급하는 전력의 75%를 재생에너지로 채웠다.

공모시장에서 거래되는 부동산 리츠 중에도 ESG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에퀴닉스는 에너지원의 100%를 청정·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데이터센터에 골라 투자하는 상품이다. 오피스 등에 주로 투자하는 보나도리얼티도 리드 인증을 받은 건축물에 집중 하는 전략으로 ESG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저소득층 임대주택인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도 주목받고 있다. 도시 내 낙후지역이나 교외 아파트를 재개발해 저소득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사업 내용이 S(사회)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헤지펀드업계의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작년 말 어포더블하우징 펀드에 수억달러를 투자해 화제를 모았다.

탄소 저감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자산에 ESG 요소를 덧붙이는 작업도 한창이다. 호주 멜버른 공항의 운영권을 갖고 있는 IFM인베스터스는 공항에 대규모 태양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맥쿼리는 보유한 필리핀 지열 발전소 시설 내 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에 투자하기도 했다. 한앤컴퍼니가 인수한 시멘트 업체 쌍용양회는 2016년부터 1150억원을 투자해 친환경 폐열발전 설비를 갖췄다. 한 대체투자 운용사 대표는 “ESG를 외면해선 투자를 받을 수도, 제값에 팔기도 어려운 시절이 됐다”며 “모든 대체자산군이 ESG를 중심으로 재배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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