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민간 기부금으로 조성하려던 사회연대기금에 정부 재정까지 쏟아붓기로 했다. 전년도에 더 걷힌 세금과 쓰지 못하고 남긴 예산을 기금에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기업 팔 비틀기’로는 모자라 ‘재정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3일 사회연대기금법 제정안 및 이와 관련한 국가재정법·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사회연대기금법 제정안은 국무조정실 산하에 민간참여형 공적 기금을 설치해 저소득층 생계 지원, 저신용자 신용 회복, 실직자 취업 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했다. 기금 재원으로는 △정부 출연금 △다른 기금의 출연금 △민간 출연금 등을 명시했다.
이 중 정부출연금은 세계잉여금(세수 초과액과 쓰고 남은 예산을 합한 순잉여금)을 주요 재원으로 삼도록 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세계잉여금에서 국채 상환 등 법정 지출을 제외한 돈의 50% 이상을 기금에 출연하도록 했다. 정부 출연금은 세계잉여금 규모에 따라 연간 수조원에 달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세계잉여금은 2017년 11조2000억원, 2018년 13조2000억원, 2019년 2조1000억원이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세계잉여금을 통상 이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사용해왔다”며 “사실상 추경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이후 실제 추경은 적자국채로 하겠다는 조삼모사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세계잉여금을 우선적으로 교부금 정산, 공적자금 상환, 국가채무 상환, 국가배상 등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그러고도 남는 돈은 추경 편성에 쓸 수 있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018년 세계잉여금 2조6000억원을 추경에 썼다. 세계잉여금 규모에 따라 수조원을 사회연대기금 재원으로 쓸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복지지출 확대 등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면서 전문가들은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적으로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들은 2019년 공식보고서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재정건전성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세계잉여금도 국가채무 상환에 적극적으로 쓸 것을 당부했다. 야권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입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5%를 초과하면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적으로 쓰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정부가 재정준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계잉여금을 나랏빚 갚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재정준칙을 사문화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국회의 압박이 이어지자 2017년 2억원이었던 대기업 출연은 2018년 27억원, 2019년 37억원, 지난해 130억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당초 4000억원을 목표로 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1242억원 규모 조성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만만한’ 공기업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에서 받은 ‘농어촌상생기금 조성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성된 1242억원 가운데 876억원(70.5%)을 공기업에서 출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잉여금이 줄어들면 기업을 향한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9년 세계잉여금은 2조1000억원으로 2014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 중 법적으로 추경 등에 쓸 수 있는 돈은 일반회계에 남은 619억원에 불과했다. 민주당은 최소 5000억원 규모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의 사용처도 불투명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안 심사과정에서 재정 악화와 기업 팔 비틀기, 기금 투명성 등 문제가 전반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서민준/조미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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