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주식시장의 시간 여행자들

입력 2021-02-03 17:28   수정 2021-02-04 00:19

또 칼럼을 써야 하는 날이다. 항상 궁금하다. 왜 칼럼 순서는 이렇게 빨리 돌아올까. 게으름 탓이다.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니 쓸 게 없는 것”이란 지적에 동의한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이란 표현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적절하다. 이런 표현을 착 달라붙는 ‘스틱(stick) 메시지’라고 하던가.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지금도 쓰이는 비결이다.

몇 년 전 칼럼 쓰는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칼럼 쓰는 날을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1주일 전에 아는 것보다 하루 전에 아는 것이 낫다는 얕은 발상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줄여보자는 뭐 그런 생각.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그림
산만하게 시작한 김에 조금 더 가보자. 시간에 대한 얘기다. 시간 하면 생각나는 그림 한 점이 있다. 프랑스 로코코 시대 화가 프라고나르가 그린 ‘빗장’. 남자가 한 팔로 여자를 껴안고, 다른 손으로는 빗장을 잠그는 순간을 그렸다. 오른쪽 하단에만 그려져 있다. 그림 절반에 가까운 왼쪽은 빨간 장막으로 덮어버렸다. 그 밑에는 침대, 베개만 있다. 물론 메타포다. 그 배치와 굴곡을 통해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빗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림이 갖고 있는 침묵의 힘을 보여준다.” 2차원 평면에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을 동시에 담았다는 것에 대한 찬사였던 것 같다.

시간은 미술에서 항상 중요한 주제였다. 모나리자는 왜 위대한 그림일까. 곧 사라질 모나리자의 미소, 마른강 위에 조그맣게 그려진 다리에는 시간과 인생, 허무에 대한 천재의 고찰이 담겨 있다는 평론가 다니엘 아라스의 해석은 설득력 있다.

너무 많이 나간 듯하다. 주제로 돌아가자. 시간은 미술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주식시장은 더 드라마틱하게 시간이란 단어를 끌어들이고 있다. 테슬라는 그 상징이다. 미래를 앞당겼다는 게 상상을 초월하는 주가의 근거다. 테슬라가 연 미래에 올라탄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도 질주 중이다. 여기서 잠깐. 3등 하는 SK이노베이션은 어떻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하게 됐을까. 1991년 12월 23일자 한 신문에 기사가 났다. 제목은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 전기자동차 만든다”였다. 몽상가에 가까웠던 한국 1세대 기업가들의 정신이 느껴진다면 과언일까.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든 기업
여하튼 주식시장에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과거를 극복하고, 현재 우위를 차지하며, 미래를 보여주는 기업에 가점을 준다. 한국 시장의 대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삼성 현대차 LG SK는 변신을 통해 배터리, 바이오, 전기·수소차, 비메모리반도체 등 미래형 사업을 준비했다. 벤처기업에서 대기업이 된 네이버와 카카오도 빼놓을 수 없는 미래형 기업이다. 주가 3000 시대를 연 주인공들은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주식시장은 시작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다. 동양으로 가는 항로와 무역이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베팅하며 주식의 역사는 시작됐다. 동인도 회사가 보여준 미래는 이뿐만 아니다. 주주명부에는 관리와 부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총독의 하녀, 어부, 가죽공방 장인 등 온갖 계층의 사람이 올라 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다. 17세기 엄청난 혁신으로부터 주식시장은 시작됐다. 변화와 시간에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끝이다. 시간만 있었으면 더 좋은 글을 썼을 텐데.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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