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겉 다르고 속 다른 脫원전

입력 2021-02-04 17:12   수정 2021-02-05 00:05

실무자가 남몰래 지웠다던 북한지역원전추진방안(북원추) 문건이 야당의 날 선 공격에 홀연히 되살아난 것은 보기 드문 기적이었다. 화들짝 놀란 정부·여당이 야당에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몰아붙이고, “명운을 걸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법적 대응 이상의 초법적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전임 비서실장은 국회 요구로 원전을 감사했던 감사원장에게 무슨 ‘냄새’가 난다고 야단이었고, 여당 대표도 국회가 요구한 범죄적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를 엉뚱하게 왜곡시켰다. 정부·여당이 지나칠 정도로 거칠게 대응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북원추 문건이 실무자의 ‘아이디어’였을 뿐이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탈원전을 밀어붙이기 위해 은밀하고 불법적으로 원전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던 실무자가 돌아서서는 난데없이 북한 원전 건설을 고민했을 가능성은 없다. 정부의 강력한 탈원전 기조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몰랐을 수도 없다. 실무자가 정말 그런 공상(空想)에 빠져 있었다면 산업부의 공직기강과 업무능력을 걱정해야 할 일이다. 일부 언론의 북한 원전 주장은 정부에 탈원전을 폐기해달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내용도 황당하다. 비무장 지대의 원전은 기술적으로 중학생도 웃을 수준이다. 용수(用水)도 없고, 접근도 어렵다. 7900억원의 투자비까지 날려버린 신한울3·4호기를 북한을 위해 되살린다는 구상도 국민 설득이 불가능한 것이다. 강력한 대북제재도 무시했다. 그렇게 황당한 발상은 오히려 비무장 지대의 상징성에 관심이 많고, 탈원전·대북제재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산업부가 직접 작성한 문건에 ‘정부의 공식 입장 아님’이라고 밝혀놓은 것은 실무자가 의도적으로 남긴 증거일 수 있다.

어설픈 문건이 생겨난 과정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이 후속조치를 위한 ‘사전연구’를 당부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보름 뒤에 북원추 문건이 작성됐다. 산업부만 그런 일을 했던 것도 아니다. 가스공사도 북한의 발전소 건설 가능성을 분석했고, 조금 늦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남북 원자력 협력방안’을 준비했다.

북원추 문건은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를 위해 탈원전을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정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민에게는 탈원전을 외치던 정부가 사실은 원전을 남북 경제협력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꼼수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운 일이라는 뜻이다. 북한에는 괜찮은 원전을 우리는 왜 경제·안전·안보까지 포기하면서 폐기해야 하는지 밝혀야 한다.

산업부의 경제성 조작 때문에 우리 국민이 떠안게 된 부담이 엄청나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772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월성1호기를 가동률과 전력 판매단가를 조작해 91억원 적자로 둔갑시켜버렸다. 결국 월성1호기 개보수에 썼던 5925억원을 포함해 무려 8697억원의 거금을 허공에 날려버린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대가로 끔찍한 전기요금 폭탄을 떠안게 될 국민의 어려움에 대한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고민이 필요했다.

월성1호기의 경제성 조작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아보겠다는 시도는 무망한 것이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구체적인 역할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청와대 에너지정책전담팀의 존재도 밝혀지고 있다. 삼중수소를 앞세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어설픈 ‘광우병 시즌2’는 제대로 피어오르지도 못하고 꺼져버렸다.

산업부가 멀쩡한 동료 3명을 포기하면서까지 북원추 문건을 애써 감추고 있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경제성 조작과 자료 삭제라는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적극행정’으로 착각했던 실무자들은 헌신짝처럼 내버려졌다. 지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적극 협조했던 교육부 관료들도 징계를 받았다. 영혼을 포기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준 실수에 대한 속죄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라도 삭제된 530여 개의 문건을 모두 찾아내서 검찰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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