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는 이 시기에 가족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야 할 명절에 이산가족의 한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안부를 묻기는커녕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조차 어렵다. 70여 년의 세월을 가족과 생이별한 채 비탄에 잠겨 살아온 그들의 한 맺힌 삶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낳은 남북 분단과 6·25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깊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이해관계와 주변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휘둘리는 일이 잦았다. 가족 간의 첫 상봉은 남북 적십자사 사이의 합의로 30여 년이 지난 1985년 9월 비로소 성사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북 간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 후속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되기까지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2018년 8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고 그해 평양 정상회담에서 상설면회소 개소와 화상 상봉, 영상편지 교환 등에 합의하던 때만 해도 가족 상봉이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북·미 관계의 교착으로 남북 관계마저 얼어붙게 되면서 마지막 만남이 돼버렸다. 남북 현안 중에서도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임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가족들의 편이 아니다. 대부분이 고령인 이산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1988년 이후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사망하고 생존자는 5만 명이 채 안 된다. 80대 이상이 60%를 넘었으며, 직계 가족 사이의 상봉도 갈수록 줄고 있다.
해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초청 행사와 유전자 검사, 영상편지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직접 밟기 어려운 북녘 고향 땅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콘텐츠를 만들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려는 노력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산가족이 평생 안고 살아온 그리움과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사후에라도 자신의 유골이 고향 땅에 묻히길 바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산가족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다. 이산가족 상봉은 그 어떤 정치적 고려보다도 우선시돼야 한다. 대면상봉이든 화상상봉이든 이번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의 만남이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