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지켜본 백승진 월간부산 대표 집필 출간
‘신발왕’‘ 정산(正山)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평전(사진)이 발간됐다.
백승진 월간부산 대표 겸 발행인(사진)이 고 박연차 회장 타계 1주기에 맞춰 ‘니, 밥 묵고 가라’(사진)라는 제목으로 평전을 5일 펴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월 지병인 폐암으로 삶을 마감했다.
평전은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의 일대기를 그를 지켜본 제3자가 평가하며 쓴 책을 말한다. 자선전과는 달리 객관적 관점에서 저술된다.
평전을 펴낸 백 대표는 “운명적으로 박 회장과 인연이 얽힌 게 30여년이 넘는 사이”라며 적게 된 배경을 밝혔다. 백 대표가 고 박 회장을 잘 아는 것은 골육지정보다 깊은 정을 맺은 천신일 세중 회장과는 중학교 급우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옥고를 겪으면서도 사양산업으로 치부된 신발 제조업을 키워 ‘글로벌 신발왕’에 등극한 기업인의 삶을 재조명했다. 1945년 경남 밀양서 태어난 박 회장은 1971년 정일산업(1980년 태광실업으로 사명 변경)을 창업한 이후 2019년 기준 매출 2조3864억원, 순이익 1765억원 규모로 사업을 키웠다. 맨손으로 일군 신화였다.
신발공장 기능공 출신이 블록 담장을 벽체 삼아 지은 공장의 제품은 1980년대 국내 신발 산업 변혁기를 맞아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박 회장은 김해시 안동에 생산 공장을 짓고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
태광은 1990년대 초 베트남 호찌민시를 거점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해외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현지 근로자의 급여 수준을 대폭 높이고 승진 대상에 베트남인을 포함했다. 개발센터 설립 등 연구 개발 투자도 늘렸다.
그 결과 태광은 베트남 내 6만여 명을 고용해 잠재적 소비자로 키운 데 이어 사회간접자본·화력 발전·비료 농업 개발·레저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태광은 또 평소 직원의 끼니를 중시하는 박 회장의 방침에 따라 해외 근로자의 식사 간식 등 공급에도 신경 써 베트남 내 초코파이 보급에 일조했다는 후문이다.
저자는 박 회장의 베트남 현지화 성공 사례가 훗날 우리 정부 신남방정책 추진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했다. 다른 생산 기업도 아세안 시장 개척을 위한 현지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전은 12장으로 구성됐다. 1장 화력발전소 꿈 못 이루고 타계, 2장 신발왕 박연차의 성공 비화, 3장 화학, 4장 소재 전력 IT산업, 5장 레저, 6장 산업단지 조성, 7장 장학사업 사회활동 공헌, 8장 민간외교, 9장 박연차 게이트의 오해와 진실, 10장 태광실업 창업 스토리와 이건희, 천신일, 백제갑의 아름다운 인연, 11장 명예박사 학위 영득과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12장 곁에서 본 박연차까지 모두 419페이지로 집필됐다.
고 박 회장 인생을 3기로 나누면 1기는 흙수저로 태어나 방황하며 월남전에까지 참전한 혼돈기였다. 2기는 26세 때 맨주먹으로 신발산업에 뛰어든 희망이 넘치던 청년 사업가였다. 비록 초등학교 학벌밖에 안되지만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로 동업자가 전멸당한 황야에서 우뚝 생존에 성공했다.
인생 3기는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베트남에서의 25년이다.남의 집 헛간 같은 공장에서 출발해 6만여명의 근로자들을 거느리는 신발왕이 되면서 인생의 황금꽃을 피웠다.
백 대표(사진)는 “정산은 평소 이 세상에 사양산업은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신발을 싣는다”며 남들이 주저앉아 포기할 때 오히려 생산시설을 근대화해 제품을 개발하고 베트남에 진출해 25년 인생의 황금기를 낯선 이국땅에 투자해 그 결실의 황금을 수확하려는 때 타계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평전에서 국가부도 상태인 1997년 외환위기(IMF) 때 3억달러를 수출해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한 점과 정부의 신남방정책 중심무대인 베트남과 동남아에 일찌감치 친한무드 교두보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백 대표는 경남중학교, 부산고등학교, 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항도일보, 부산경제신문, 부산매일신문, 월간부산 등에서 지난 40여년간 부산의 생생한 경제현장 등을 취재해오고 있는 현직 언론인이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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