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의 유대민족은 재산이나 소득의 10분의 1을 신에게 바치는 ‘십일조’ 관습이 있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재산의 10분의 1을 바쳤고, 그의 손자 야곱은 하느님이 무엇을 주든지 그 10분의 1을 반드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십일조의 기원이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주민들에게 수입의 10분의 1을 교회세로 징수했다. 유대교 관습에서 비롯된 십일조를 점점 신자의 의무로 강조하다가 아예 세금으로 강제 징수한 것이다. 교회세는 17~18세기 근대에 들어서야 폐지됐다. 1만여 년 전 농업혁명 이후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적의 침입을 막을 군대가 필요했다. 수시로 전쟁에 동원되는 병사들은 농업에 종사할 수 없기에 공동체에서 이들의 생계를 위해 곡물을 걷어준 것이 세금의 기원이다.
국가가 세금을 걷을 수 있었던 또 다른 명목은 생명 보장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고 노예가 됐던 시대에 군주는 백성에게 세금을 걷는 대신 군대를 유지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의 세금이 국방, 치안, 인프라 건설과 같은 공공재 유지에 쓰이는 것과 같다. 반대로 백성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세금을 걷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됐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슬람제국이 동로마제국 군대에 밀려 철수할 때 주민들에게 그간 걷은 세금을 돌려준 일화는 유명하다. 대부분 기독교도인 주민들은 본래 지배자인 동로마 군대에 오히려 적대적이었다. 이슬람제국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한 이유 중 이런 관대한 세금도 빼놓을 수 없다.
로마의 조세체계가 흔들린 것은 212년 카라칼라 황제 때다. 속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안토니누스칙령*을 내려 속주세가 폐지되자 구멍 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특별세를 남발한 것이다.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세금 징수는 더 쪼그라드는 악순환이 로마 몰락을 앞당겼다.
고대 중국에서도 10%를 적정 세율로 여겼다. 맹자는 세율이 너무 낮으면 관리 채용 등 국가 운영이 어려워지고, 너무 높으면 백성의 마음을 잃어 반란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맹자는 세금을 걷는 방법으로 직물·곡물·노역 징발이 있는데 이 중 둘을 동시에 부과하면 백성이 굶주리게 되고 셋을 한꺼번에 적용하면 부모 자식이 흩어진다고 강조했다. 전란이 빈번해 세금이 무거웠던 춘추전국시대에 맹자는 적정 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몽골의 칭기즈칸도 점령지에서 조공을 걷을 때는 10%만 받았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할 때는 세율 인상 대신에 토지에 10%, 농작물에 10% 등 세목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고대에 낮은 세율을 유지했던 것은 과중한 세금이 민심 이반과 반란을 초래해 왕조의 몰락을 가져올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전성기 로마제국의 안정적인 조세체계에서 보듯이 세율이 낮으면 오히려 세금이 잘 걷힌다. 1980년대 미국에서 소득 세율을 낮추자 세수가 더 늘어나기도 했다. 납세자는 굳이 탈세를 궁리할 필요 없이 떳떳하게 세금을 내는 게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탈세는 세금을 절감할 수는 있지만 세금 회피를 위한 변호사·세무사 고용 등의 비용과 들켰을 때의 징벌 위험을 수반한다.
따라서 국가의 조세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납세자가 세금을 감당할 수준이어야 조세 회피를 예방하고 세금 징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들은 세원은 최대한 넓히면서 세율까지 올리는 데 혈안이다. 불행히도 인생에서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 안토니누스칙령
칙령을 내리기 전 속주민은 제한된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 칙령의 선포로 로마제국의 모든 남자 자유민은 시민권을 갖게 됐고, 시민으로서 행동·재산의 자유를 보장받고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게 됐다.
② 세율이 높아질수록 조세수입이 늘어나지만 꼭짓점(최적조세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조세수입이 줄어드는 포물선(실제로는 역방향 포물선)을 그린다는 ‘래퍼곡선’이 나타나는 이유는 왜일까.
③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세·지방세 등 세금 비율인 ‘납세자 조세부담률’은 2019년 20.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4.9%(2018년 기준)보다 낮은데 복지지출을 감안한 적정 부담률은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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