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유통혁명을 부르짖다
일찌감치 유통과 물류의 중요성을 알아본 조선시대 학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은 박제가(朴齊家·1750~1805)입니다. 조선 영조·정조 시대 때 활약했던 실학파(혹은 북학파) 학자 중 한 명입니다. 박제가는 유통이 개선되어야 조선의 나랏살림이 그나마 나아진다고 봤습니다. 그가 정조에게 올린 ‘북학의(北學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조선의 유통과 물류의 개혁을 갈구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한 대목을 읽어볼까요?
“영동 지방에는 꿀은 생산되나 소금이 없고, 평안도 관서 지방에는 철은 생산되나 감귤이 없다. 산골에는 팥이 흔하고, 해변에는 창명젓과 메기가 흔하다. 영남지방에는 좋은 종이가 나오고, 보은에는 대추가 많고, 한강 입구 강화에는 감이 많은데…백성들은 이런 물자를 서로 풍족하게 교환하여 쓰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동서로 1000리, 남북으로 3000리로 작은데 물가가 고르지 않다…물자를 교환할 도로와 수레가 없기 때문이다.”
박제가의 꿈은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1970년 ‘경부고속도로’라는 이름의 거대 유통망, 물류망의 뼈대로 실현됐습니다. 그 이후 박제가가 그토록 원했던 사통팔달 도로망은 갖춰졌고, 그 위를 자동차, 트럭, 냉동·냉장차, 트레일러, 고속버스가 질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각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은 이제 하루도 안 돼 유통되고 판매됩니다.
그런데 유통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유통이 발달하면,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 발생하는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내려갑니다. 지금과 같은 물류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감, 귤, 회, 고등어, 사과, 수박, 옷, 냉장고 등을 쉽게 사거나 싸게 먹지 못할 것입니다. 공급자들도 많이 팔기 어렵습니다. 유통망에 존재하는 중간상인, 도매상인들이 이 거래비용을 낮추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합니다.
우리는 도매상이나 중간상을 자주 욕합니다. 생산자도 아닌데 중간에서 이득을 보고, 이것 때문에 가격이 더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중간상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먹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생산지로 직접 가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고등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여러분은 공부를 접고 어촌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직접 간다고 해도 잡은 고기가 없어서 허탕 칠 수도 있습니다. 수박을 얻으려면 우리는 또 수박 산지로 직접 가야 합니다. 고등어 사러, 수박 사러 그렇게 돌아다녀야 한다면 자기 일은 언제 합니까?
이때 중간상인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소비자를 위해 먼 생산지에서 물건을 가져다 장에서 팔아줍니다. 산지→도매상→소매상→소비자를 거치게 되는 이유죠. 도매상은 물량을 일정하게 확보해서 공급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들이 없다면 거래비용은 엄청나게 높아질 겁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여러분처럼 ‘중간상인’과 상업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중간에서 이득만 본다고 비난했었죠. 상업을 천시했던 이유입니다. 이제 이런 시각이 잘못됐다는 점을 깨달으셨나요? 요즘은 인터넷 유통이 발달해서 산지→소비자 직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요즘엔 거꾸로 대형마트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모바일 쇼핑과 온라인 홈쇼핑 때문에 장사를 망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모바일 쇼핑을 규제하면 될까요? 대형마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매주 첫째·셋째 주말, 모바일 쇼핑과 온라인 쇼핑을 못 하게 규제할까요? 이젠 아마존 쇼핑까지 나와서 대형마트들을 괴롭히는 시대입니다. 집에서 음식도 배달해서 먹는 시대죠. 유통 혹은 물류는 4면에서 배운 것처럼 빠르게 진화해 왔고 앞으로 더 진화할 겁니다. 박제가 선생이 오늘날 대한민국 유통을 보면 놀라서 뒤로 자빠질 겁니다. 재화와 서비스, 정보가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박제가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② 박제가가 쓴 ‘북학의’ 번역서를 읽어보고 그가 꿈꾼 나라의 모습을 이야기해보자.
③ 거래비용과 유통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 중간상인의 역할을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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