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올해는 코로나가 물러났다지요?"

입력 2021-02-08 09:00  


설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은 우리나라에서 음력 1월 1일, 즉 정월 초하룻날을 명절로 부르는 이름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섣달 그믐날 밤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었다. ‘섣달 그믐’은 살가운 순우리말인데, 요즘은 잘 안 써서 그런지 점차 말의 세력이 약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해 첫날’ 양력·음력 두 번 지내 ‘이중과세’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 즉 12월을 가리킨다. ‘그믐’이란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섣달 그믐 다음 날이 새해 첫날, 곧 설이다. 그 설을 조상들은 밤을 새워 맞았으니 해(歲·세)를 지킨 셈이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며, 우리 고유어로는 ‘해지킴’이라 부른다.

설날 아침에는 흔히 떡국을 먹고 웃어른께 문안 인사를 다닌다. 이를 ‘절인사’(절을 하여 드리는 인사)라고 하는데, 설에 드리는 절을 특히 ‘세배(歲拜)’라고 한다. 이때 아랫사람은 ‘절문안’(절을 하면서 웃어른께 안부를 여쭘)을 하고 웃어른은 ‘덕담’을 건넨다. 예전에는 절문안으로 “과세 안녕하십니까” “만수무강하십시오” 같은 게 많이 쓰였다. 요즘은 이런 격식 있는 말보다는 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 정도를 쓰면 무난할 것 같다. 다만 ‘과세(過歲)’는 한자어라서 그런지 젊은 층에서 다소 낯설어 하는데, 설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라 알아둘 만하다. ‘지날 과(過), 해 세(歲)’ 자다. ‘해를 보내다’란 뜻이다. 이를 우리는 “설을 쇤다”고 했다. ‘쇠다’란 ‘기념일 같은 날을 맞이해 지내다’라는 의미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쇠고, 환갑을 쇠고, 생일을 쇠었다. 그러니 “과세 안녕하십니까”란 “설을 잘 쇠셨습니까” 하고 여쭙는 말이다.

한자 의식이 흐려진 요즘은 한글로 ‘과세’라고 하면 자칫 ‘세금을 매긴다’는 과세(課稅)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새해 첫날을 양력과 음력으로 두 차례에 걸쳐 쇤다는 뜻에서 ‘이중과세(二重過歲)’란 말도 생겼는데, 이 역시 세금을 이중으로 물린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課稅)’로 생각할 듯하다. 모두 우리말 어휘이니 함께 알아두는 게 좋다.
새해 인사로는 “복 많이 받으세요”가 무난
절문안이나 덕담이나 말하는 이가 듣는 이의 상황에 맞게 마음을 담아 하면 된다. 이때 자칫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잔소리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요즘 “만수무강하십시오”나 “오래오래 사세요” 같은 말은 의도와는 달리 어른에게 서글픔을 줄 수도 있으니 안 쓰는 게 좋다(국립국어원, <표준화법 해설>). “올해는 장가 가야지”처럼 직접적으로 하는 말도 듣는 이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구한말 사학자이자 문인인 육당 최남선의 덕담 풀이를 음미해 볼 만하다. 같은 말이더라도 전하는 맛이 다르다. 그는 <조선상식-풍속 편>에서 덕담이란 과거형의 말을 통해 그렇게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올해엔 돈 많이 벌었다지요?” “새해엔 장가갔다지?” 하는 식이다. 과거시제를 나타내는 어미 ‘-았/었’에다 종결어미 ‘-다지’를 붙였다. 이 말은 들어서 알고 있거나 이미 전제돼 있는 사실에 대해 다시 확인해 묻는 뜻을 나타낸다. 이미 실현된 것처럼 말하면서 그걸 슬쩍 재차 확인하는 투의 절묘한 화법이다. 속담에도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그런 유형의 표현이다. 덕담을 통해 주술적 힘을 담아 바라는 바를 전하는 것이다. 올 설에는 이런 덕담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가 싹 없어졌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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