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외국인이 얼마나 팔았는지 신경쓰지 마라

입력 2021-02-05 17:39   수정 2021-02-05 23:33

“‘개관’들 대체 물량을 얼마나 갖고 있는 거지?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네.”

“‘코쟁이’랑 개관, 남김없이 팔고 가라.”

인터넷 주식 종목 토론실(종토방)엔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글이 수없이 많다. 기관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개와 기관의 합성어 격인 ‘개관’이라고 낮춰 부른다. 외국인은 ‘외인’ ‘외놈’ ‘코쟁이’ 등으로 부르며 적대감을 나타낸다.

피아 구별이 분명하다. ‘개미’(개인투자자) 대 ‘개관+외놈’의 대결 구도다. 매일 장이 끝나면 대부분 종목 게시판엔 그날의 매동(매매동향)을 정리한 글이 올라온다.

기관과 외국인이 순매도한 날엔 “매국노 개관에 맞서 동학개미 출동”이라며 결의를 다진다. 기관이 순매도했지만 주가가 뛴 날엔 “개관이 털리는 건 처음 보네”라며 반긴다.

이렇게 순화되지 않은 말로 적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종토방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종토방은 ‘감정의 배출구’로 로마 시대 콜로세움과 닮았다.

콜로세움은 로마 황제가 시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은 대규모 원형경기장이다. 목숨을 건 검투사들의 대결을 지켜보며 대중이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낸 곳이었다. 검투사들의 대결마냥 살벌한 주식 투자로 돈을 벌거나 잃으면서 때론 기쁨을 때론 분노를 토해낸다는 점에서 종토방은 오늘날의 콜로세움이라 부를 만하다.

그렇다고 종토방이 ‘문제’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종토방에서의 ‘개미’ 대 ‘기관+외국인’의 대결 구도에 익숙해져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펀드매니저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관, 외국인, 개인의 구분은 혈액형을 A형, B형, O형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습니다. 편의상 시장 참여자를 세 그룹으로 나눈 것뿐이에요. 가장 큰 특징으로 구분하니까 세 그룹이 된 거죠. A형 혈액형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성격이나 특징을 갖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마다 다 다르죠. 기관도, 외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관은 팔고 다른 기관은 삽니다. 세 그룹별로 합계를 내다보니 기관 순매도, 외국인 순매도, 개인 순매수 식으로 잡히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이 결과를 놓고 개미만 샀으니 불안하다 또는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개미는 지난해부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마디로 ‘개인 주도 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이, 외국인이 파는 걸 지나치게 우려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한 애널리스트는 “코스피지수 1400에서 올라올 당시의 기사를 찾아보면 개미만 사고 있다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 뒤로 개인은 계속 사고 있고 개인이 좋아하는 바이오의 경우 기관과 외국인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돈이 많이 풀렸지만 앞으로도 더 풀릴 것이고 그렇게 풀린 돈이 주식시장으로 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중 부동자금이 얼마라는 것보다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2000년대 중반 미래에셋이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미래가 뭐 사냐”가 증권가 최대 관심사였다. 외국인도 미래에셋이 사는 종목을 물어봤을 정도다. 시장의 자금이 미래에셋으로 몰리던 때였으니 미래에셋이 선호하는 종목이 아웃퍼폼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뭘 사야 할까. 코로나 사태로 엄청나게 풀린 돈이 ‘개인’을 통해서 증시로 들어오고 있다. 과거의 미래에셋이 지금은 개인인 셈이다. 결국 개인이 선호하는 종목이 아웃퍼폼할 상황이다.

다만 개인이 주도하는 증시는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유념하라는 조언이다. 펀드매니저 A씨는 “지난주 증시가 조정받을 때 개인이 좋아하는 종목이 많이 빠졌다”며 “기관과 외국인은 그런 상황에선 잘 안 판다”고 전했다.

지금은 기관이, 외국인이 얼마 팔았는지에 신경쓸 때가 아닌 것 같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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