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재정당국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간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여권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나랏돈을 더 화끈하게 풀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홍 부총리는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권에선 홍 부총리를 겨냥해 “자기만 옳다는 확신을 절제하라”고 하는 등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경제계에선 거대여당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재정당국을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대통령이 나서서 당정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2일엔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전 국민 보편 지원과 소상공인 등 선별 지원을 동시에 하는 방향으로 4차 재난지원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이라고 반대 뜻을 드러냈다. 재정 소요가 너무 크다는 이유 등에서다.
더 직접적인 비판도 나왔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홍 부총리가 민주당의 병행 방침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며 “표현을 절제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재부의 실무 판단만이 옳다는 자기 확신을 절제하는 것”이라고 저격했다. 그는 “우리 헌법엔 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갖고 국회가 심의·의결권을 갖도록 돼 있다”며 “기재부 판단만 옳다는 자세는 헌법 원칙에도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양향자 최고위원도 “대한민국의 경제수장이 당정 회의라는 회의체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SNS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세련되지도, 정무적이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홍 부총리는 이어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재정을 맡은 입장에서 재정수지나 국가 채무 등 건전성 문제를 같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도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는 “재정당국이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재정건전성을 보는 시각도 존중해달라”고 했다. 여당의 계속된 압박에도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홍 부총리는 이날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사전지정 운용제도)을 검토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디폴트 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적립금에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사전에 지정한 적격 연금상품을 자동으로 편입하는 제도다. 그는 “해외에서도 많이 도입됐고,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정부도 금융당국과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당정 간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국정 운영에 차질을 주고 국민에게 피해만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문제를 방치만 할 게 아니라 당정 간 갈등을 적극 조율하고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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