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0년. 이제 맘만 먹으면 소프트한 '현질' 쯤은 할 수 있는 '아재 게이머'가 됐습니다. 예전에도 게임 실력은 별볼일 없었지만, 실력은 더 퇴보했습니다. 미션을 깨는 데 실패하면 트레이너(게임을 쉽게 만들어주는 에디팅 프로그램)의 유혹에 빠집니다. 퇴근 후 게임을 할라치면 눈꺼풀이 무거워져 유튜브의 게임방송을 자주 봅니다. 주변 아재 게이머들이 대부분 이렇다고 하네요.
게임은 국내 콘텐츠 산업 중 수출액 1위(콘텐츠진흥원 2019년 기준 69억달러)입니다. K팝도, K드라마도 'K게임'의 수출 실적엔 아직 못 미칩니다. 때론 후회도 듭니다. "내가 게임에 돈을 쓰는 대신 이 게임을 만든 회사 주식을 미리 샀더라면..." 이런 얘기들도 가끔 풀어보려 합니다. 현재 보유 기종은 PC(그래픽 카드는 GTX 1070TI), 휴대폰(갤럭시 노트10+),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스테이션4. 전국의 아재 게이머를 응원합니다.
카트라이더는 국내 게임사 넥슨을 굴지의 기업으로 만들어준 효자 IP(지적재산권)입니다. 발매 초기엔 일본 닌텐도의 마리오 카트를 표절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방해 아이템으로 겨루는 '아이템전'에 한정된 이야기죠. 카트라이더의 '스피드전'은 독창적 요소로 가득합니다. 드리프트를 하면 카트 속도를 빨리해주는 '부스터'가 모이고 부스터를 사용해가며 요리조리 잘 트랙을 달려 상대보다 앞서 들어오는 게 게임의 목적입니다.
PC판 카트라이더는 키보드 7개의 키(방향키 4개, 알트, 콘트롤, 쉬프트)를 주로 이용합니다. 손가락만으로 어떻게 레이싱 게임을 하냐고요. 가능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카트라이더는 프로게임 리그가 생긴 몇 안되는 국내 게임입니다. '고수' 반열에 오르려면 부스터를 쓰면서 다음 부스터를 모으는 '무한 부스터' 기술이 필수입니다. 프로게이머의 경기 장면을 보면 엄청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 '꼬꼬마 게이머'였던 카트라이더 최강자 문호준은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카드 게임단의 감독이 된다고 하네요.)
절치부심해도 실력이 잘 오르지 않았습니다. 게임은 개발자가 만드는 게 반, 게이머가 만드는 게 반이라고 하죠. PC판에선 '고수'들만 사용하던 기술이 모바일 판에선 이미 보편화한지 오래였습니다. 결국 '현질'을 하기로 했습니다. 거금 8만원 가량을 들여 최강의 카트를 구매했는데, 여전히 드리프트 실력은 꽝입니다.
PC판에서 승리를 놓치면 죄없는 키보드를 치곤 했는데, 비싼 스마트폰을 내던질 수도 없습니다. '그 비싼 카트 타고 공짜 카트를 못이기네'라는 채팅창 글을 보고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아재 게이머는 문득 꼰대스러운 생각을 해봅니다. '저놈 저거 분명 나보다 스무살은 어릴 거야. ㅠㅠ'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선두와 10초 이상 차이가 나는 건 카트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게임엔 상황판단력이 필수 입니다. 이때문에 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입니다. 20대 후반 게이머가 '할배'라고 불릴 지경이죠. 역설적으로 2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뛰는 프로게이머는 실력을 아주 잘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카트라이더 러쉬에는 동체시력도 필요합니다. 트랙의 방향을 예측하고 카트의 머리를 틀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벽에 박고, 벽과 카트를 비비다 보면 순위는 저아래로 떨어져있기 일쑤입니다. 타임어택 모드에 들어가면 기록이 가장 좋은 고수의 주행을 볼 수 있습니다. 유려합니다. 부스터는 끊기지 않습니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자주 충돌하는 제 주행과는 비할바가 아닙니다.
고수의 주행을 본다고 고수처럼 달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한계를 압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게임 금수저'가 있습니다. 어떤 게임을 해도 적응을 잘하고 실력이 빨리 느는 사람 말이죠. 재능의 영역입니다. 예닐곱살부터 30년 넘게 게임판을 기웃거리며 얻은 결론 입니다. 캐릭터가 죽고 기록이 못 미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두려워하기보다는 '까짓것 뭐'라며 계속 시도하는 멘탈이 있어야 지금의 실력을 뚫고 다음 경지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도 좌절하지 않고, 당분간 달려볼 생각입니다.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뚫을 때까지만.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