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이 발표한 올 설 선물세트 판매 결과를 보다 참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대비 매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품목이 한우라는 대목에서 ‘단군 이래 최고라는 한우값은 앞으로도 쭉 이어지겠구나’ 싶었습니다.
현대백화점의 한우 매출이 무려 55.8% 늘었고, 판매 상위 1~10위를 한우 선물세트가 모두 휩쓸었다고 합니다. 롯데백화점에선 100세트 한정으로 선보인 170만원짜리 한우 세트가 금새 동이 났다고 하고요.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역시 한우를 포함한 정육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51.8%, 39% 증가했습니다.
‘한우 민족’이라고 할 만큼 유별난 한우 사랑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소고기를 귀한 음식으로 대접해 온 것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근대화 이전까지 한국의 산업은 사실상 농업이 전부였습니다. 지력을 유지하려면 땅을 잘 일궈야했는데, 소는 이를 가능케하는 유일한 생산수단이었습니다. 귀중한 생산수단을 잡아서 음식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소고기에 매겨진 가치는 어마어마했겠지요.
요즘 들어 한우 소비가 많아진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대면 명절을 지내야하니 이왕이면 좋은 선물을 해야겠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게다가 올해는 정부가 소비 심리 진작을 위해 청탁금지법의 선물가액 상한선을 20만원으로 올렸습니다. 부동산, 주식 시장의 활황으로 가계별 가처분 소득이 증가한 것도 한우 소비 호황의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요즘 한우 소비의 또 다른 특징은 유독 구이용에 대한 편식이 심하다는 점입니다. 예전엔 갈비용, 국거리용 등 다양한 부위를 찾았는데 요즘엔 선물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이 구이용을 찾는다고 합니다. 유튜브 ‘먹방러’들이 주로 한우를 구워먹으면서 엄청난 먹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아무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유독 요즘 세대가 스테이크를 포함해 구이용 한우에 열광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특정 부위 선호 현상은 한우값의 고공행진을 부채질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소 한마리를 도축했을 때 생산자가 받게 되는 이익을 100이라고 가정해보죠. 비선호 부위의 가격이 떨어지면 선호 부위의 가격을 올려서 100을 맞출 수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우 가격을 낮추려면 미국이나 남미 국가들처럼 축산농가를 기업형으로 육성해 공급량을 대폭 늘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롯데, 이마트, 현대백화점처럼 대규모 유통업체들이 축산업에 뛰어든다고 하면 골목상권 침해를 넘어 축산농가를 죽이려 한다며 반발이 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앞으로도 한우값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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