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의 주가는 좋을 일이 별로 없었다. 때가 되면 치고 나가는 정보기술(IT) 부품 기업과는 달랐다. 철저하게 수직계열화한 자동차 산업구조에서 단순 하청업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등 미래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자 수직계열화 구조가 장점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현대자동차·기아 덕에 미래차 시대를 선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글로벌 IT 기업들의 ‘전기차 제조기지’로 떠오르는 것도 이런 수직계열화와 무관치 않다. 애플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협상 중단설 등 잡음이 있지만 한국이 미래형 자동차 생산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것은 차체부터 부품까지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납품처를 다변화할 기회도 열리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부터 중국의 스타트업까지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 부품업체들은 엔진 시대에 성공이라는 함정에 빠질 일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다. 독일 부품사는 다임러벤츠 등 프리미엄 자동차 기업이 중국에서 호황을 누리면서 전기차 대응이 늦어졌다. 일본은 1997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차량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 독이 됐다. 하이브리드 차 판매가 늘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서 수익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품사도 하이브리드에 집중했다. 미국 부품사는 2000년 이후 기술 개발에 뒤처졌다.
반면 한국 부품기업들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나섰다. 폭스바겐 플랫폼에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배터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타이어) 한온시스템(전동 컴프레서)이 부품을 공급한다. GM 플랫폼에는 LG화학(배터리) LG전자(구동모터 컨버터 인버터) 에스엘(헤드램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타이어) 등이 제품을 납품한다.
플랫폼 기업이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면 부품기업들도 수혜를 본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장부품은 배터리와 비교하면 원가 비중이 낮지만 내연기관 부품과 비교하면 단가가 최대 5배까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법은 글로벌 선도 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폭스바겐 밸류체인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한온시스템, 만도, 우리산업, 평화정공은 중국 니오와 샤오펑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만도와 우리산업, 평화정공은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와 리비안 밸류체인에도 들어가 있다.
대표적인 전기차 부품주는 현대모비스다. 만도와 한온시스템 등은 이런 기대가 반영돼 주가수익비율(PER)이 30배를 넘어섰다. 현대모비스도 주가가 올랐지만 PER은 15배 수준이다. 이 회사 목표주가를 53만원으로 제시한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도입함에 따라 핵심 부품사인 현대모비스가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를 따라 미국에 진출한 대표적 기업은 에스엘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미국 매출이 50% 증가하는 에스엘이 글로벌 헤드램프 제조업체로 인정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에스엘 예상 매출은 작년보다 20% 늘어난 3조원이다. 현대차·기아 미국 생산량이 급증하고, GM에 납품하는 물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조적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의 부품 기업도 있다. 테슬라가 긴 주행거리와 배터리 효율을 자랑하는 것은 배터리 시스템 디자인 외에 열관리 시스템을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한온시스템이 대표적 회사다. 우리산업도 주목할 만하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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