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비톡’(사진)이라는 앱을 들어보셨는지. 한때 가입자가 500만 명을 넘었으니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 나도 깔았었지’ 싶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위비톡은 우리은행이 2016년 1월 야심차게 내놓은 스마트폰 메신저다. 모바일뱅킹과 메신저를 결합하고 쇼핑, 생활정보 등을 얹어 신개념 금융 플랫폼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초창기 반짝 화제를 모은 뒤 어느샌가 잊혀졌고, 작년 11월에 조용히 문을 닫았다.
한 기업의 아픈 곳을 찌르려고 옛날 앱 얘기를 끄집어낸 게 아니다. 위비톡은 핀테크 플랫폼의 급성장에 맞선 은행권의 실험으로 분명 의미가 있었다. 메신저로서 기능과 품질만 놓고 보면 카카오톡보다 나은 구석도 있었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되짚어 보면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억지로 깔게 한 것’, 다른 하나는 ‘혜택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이용자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불편을 느끼는 점)’를 긁어주는 앱이 성공한다고. 요즘 잘나가는 핀테크 서비스는 한결같이 이 원칙에 충실하다.
카카오뱅크는 신용점수가 오른 대출 이용자에게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하라”고 먼저 알려준다. 서비스 시작 1년 만에 8만2000명이 금리 인하를 받아 30억원의 이자를 아꼈다. 뱅크샐러드는 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해 무조건 지금 쓰는 카드보다 할인·적립 혜택이 큰 순서대로 카드를 추천해준다. 사실 대형 은행의 핀테크 기술로 이런 서비스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자수익 줄어들까 봐, 카드고객 빠져나갈까 봐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주는 것조차 망설였던 것은 아닐까. 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핀테크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고객들이 은행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이달 출범하는 토스증권이 지난 3일 공개한 주식거래시스템(MTS)도 금융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봐야 할 것 같다. ‘주린이’(주식투자 입문자)를 사로잡기 위해 쉽고 편하게 만드는 데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요즘 은행권은 더 이상 위비톡 같은 ‘자체 플랫폼’ 확보에만 매달리진 않는다. 이런 방법으론 ‘태생부터가 플랫폼’인 빅테크(대형 인터넷기업)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올라타 영업 접점을 넓히면서 은행만의 장점을 살리자는 전략이 대세다. 금융연구원은 “은행과 빅테크가 적극적으로 제휴·협력할 것”을 제언했다. 빅테크는 대형 은행급 규모를 갖췄으면서도 기존 은행의 약점인 낡은 IT 시스템과 관료적 조직문화에서 자유롭다는 이유에서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핀테크 혁신의 모범사례로 드는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등도 같은 길을 걸었다.
올해는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를 위한 진검승부가 예고돼 있다.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 등의 핀테크 정책이 본격 확대되면서다. 전문가들이 꼽는 은행의 비교우위는 ‘신뢰’라고 한다. 은행의 핀테크 혁신, 말처럼 쉬운 얘긴 아니지만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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