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납품은 '독이 든 사과'"…구매력 앞세워 '슈퍼 갑질'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2-09 13:09   수정 2021-02-09 13:53


애플과 현대자동차그룹 간 '자율주행차' 관련 논의가 중단된 배경으로 애플의 '유별난 협상 전략'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애플이 '비밀유지'를 강요하고 자사 기술에 대한 보안은 특별하게 챙기는 등 '슈퍼 갑'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애플은 막강한 구매력을 앞세워 세계 산업계를 쥐락펴락해왔다. 평판은 엇갈린다.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부품사를 높이 대우하는 '선한 구매자'인 동시에 일반 부품사들에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소비자들에겐 '트렌드 세터'의 상징인 애플이 부품업계에선 '독이 든 성배'로 통하는 이유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애플의 강력한 협상력의 원천은 세계적인 팬덤에서 나오는 '구매파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작년 10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12'는 지난해 4분기에만 5000만대 이상 팔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5G(5세대) 스마트폰 판매량(4100만대)보다 많다. 그만큼 많은 부품을 구매한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애플의 2019년 반도체 구매액은 40조원 규모였다. 애플의 지난해 매출(약 290조원)을 감안할 때 애플의 부품 구입액은 약 80조원(아이폰 전체 가격에서 부품 비중 27% 가정)으로 평가된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 TSMC의 최신 생산라인 절반을 '입도선매'할 정도다. 안정적인 납품처를 갈망하는 부품사들에겐 무조건 공략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애플을 뚫었다는 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는 훈장도 된다. 애플은 신규 부품사를 선정할 때 혹독한 테스트를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밀유지'는 필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애플에 납품사가 '애플'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라고 설명했다.
애플 납품 '3수' 중국 BOE
'애플 부품사'란 명함을 갖기 위해 '3수'도 불사한다. 중국 1위 디스플레이 패널업체 BOE(징둥팡)가 대표적인 사례다. BOE는 2019년 애플 아이폰11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패널 공급사 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아이폰12와 관련해서도 두 차례 이상 고배를 마셨다. 쓰촨성 청두와 면양에 수조원을 들여 애플 전용 대규모 생산라인을 설치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기술의 벽'은 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뚫으면 안정적인 실적이 보장된다. LG이노텍은 아이폰12용 카메라와 비행시간측정(ToF) 모듈 등을 공급했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사업부의 작년 4분기 매출은 3조5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전 분기 대비 110% 증가했다.


자사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부품을 납품받기 위해서 '파격적인 금액'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게 부품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애플은 삼성전기 등 소수의 부품사만 제조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잠망경형 카메라'에 욕심을 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카툭튀'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현재 삼성전기는 이 제품을 삼성전자에만 납품 중인데 애플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품업체 CEO는 "천만금을 주고라도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는게 애플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부품업계에선 '단가 후려치기' 소문도 나와
반대로 품질이 뛰어나도 '독점 기술'이 아니라면 애플과 대등한 협상은 쉽지 않다는 게 부품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애플은 처음엔 안정적인 납품을 할 수 있는 부품사와 거래를 트고 이후 추가로 공급사를 선정해 '경쟁'시키기로 유명하다. 삼성디스플레이가 90% 이상 공급했던 OLED 패널 공급사에 지난해부터 LG디스플레이를 추가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와 계약 조항에 '일정 물량이 안 팔리면 보상해준다'는 계약 조항을 없애겠다고 통보했다.

에플이 유독 심하게 '단가를 후려친다'는 원성도 자자하다. 애플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부품사들은 일부러 애플 납품을 피하기도 한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 부품업체 사장은 "제품 수요가 큰 상황에선 일부러 애플 공급사 자리를 경쟁사들에게 넘겨준 적도 있다"며 "경쟁사들이 애플에 납품하느라 놓친 물량을 '이삭줍기'식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동시에 애플의 '단가 후려치기'로 경쟁사 수익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사에 '아이폰 광고비 전가' 공정위 철퇴 맞기도
애플은 도가 넘는 갑질로 각 국 경쟁당국의 철퇴를 맞기도 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들 대상으로 아이폰 광고비를 떠넘기는 등 '부당한 거래조건'을 강요한 게 좋은 사례로 꼽힌다. 애플은 2019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최근 '상생기금 1000억원 조성','유상 수리비 10% 할인' 등의 대책을 내놨다.


애플 거래업체 사이에선 '언제든 애플이 돌아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비해야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애플은 '맥(Mac)'용 프로세서 'M1' 독자 개발 사실을 발표했다. 지금은 인텔 CPU와 독자칩 M1을 동시에 활용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턴 20년 이상 거래 관계를 유지했던 인텔과의 '밀월'이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애플 납품은 '독이 든 성배'...결국 '기술력' 키워야
결국 애플과는 '기술력'으로 승부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부터 미국 통신칩 개발업체 퀄컴과 34조원 규모 특허 소송을 벌였던 애플은 2019년 4월 돌연 '소송 취하'를 선언했다. 삼성으로부터 5G 통신칩을 공급받지 못하게되자 퀄컴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구체적 합의 내용과 로열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애플은 퀄컴에 일회성으로 로열티를 지급하는 6년짜리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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