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현대자동차그룹 간 '자율주행차' 관련 논의가 중단된 배경으로 애플의 '유별난 협상 전략'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애플이 '비밀유지'를 강요하고 자사 기술에 대한 보안은 특별하게 챙기는 등 '슈퍼 갑'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애플은 막강한 구매력을 앞세워 세계 산업계를 쥐락펴락해왔다. 평판은 엇갈린다.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부품사를 높이 대우하는 '선한 구매자'인 동시에 일반 부품사들에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소비자들에겐 '트렌드 세터'의 상징인 애플이 부품업계에선 '독이 든 성배'로 통하는 이유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애플의 강력한 협상력의 원천은 세계적인 팬덤에서 나오는 '구매파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작년 10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12'는 지난해 4분기에만 5000만대 이상 팔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5G(5세대) 스마트폰 판매량(4100만대)보다 많다. 그만큼 많은 부품을 구매한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애플의 2019년 반도체 구매액은 40조원 규모였다. 애플의 지난해 매출(약 290조원)을 감안할 때 애플의 부품 구입액은 약 80조원(아이폰 전체 가격에서 부품 비중 27% 가정)으로 평가된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 TSMC의 최신 생산라인 절반을 '입도선매'할 정도다. 안정적인 납품처를 갈망하는 부품사들에겐 무조건 공략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애플을 뚫었다는 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는 훈장도 된다. 애플은 신규 부품사를 선정할 때 혹독한 테스트를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밀유지'는 필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애플에 납품사가 '애플'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라고 설명했다.
한 번 뚫으면 안정적인 실적이 보장된다. LG이노텍은 아이폰12용 카메라와 비행시간측정(ToF) 모듈 등을 공급했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사업부의 작년 4분기 매출은 3조5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전 분기 대비 110% 증가했다.
자사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부품을 납품받기 위해서 '파격적인 금액'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게 부품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애플은 삼성전기 등 소수의 부품사만 제조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잠망경형 카메라'에 욕심을 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카툭튀'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현재 삼성전기는 이 제품을 삼성전자에만 납품 중인데 애플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품업체 CEO는 "천만금을 주고라도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는게 애플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에플이 유독 심하게 '단가를 후려친다'는 원성도 자자하다. 애플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가진 부품사들은 일부러 애플 납품을 피하기도 한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 부품업체 사장은 "제품 수요가 큰 상황에선 일부러 애플 공급사 자리를 경쟁사들에게 넘겨준 적도 있다"며 "경쟁사들이 애플에 납품하느라 놓친 물량을 '이삭줍기'식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동시에 애플의 '단가 후려치기'로 경쟁사 수익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플 거래업체 사이에선 '언제든 애플이 돌아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비해야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애플은 '맥(Mac)'용 프로세서 'M1' 독자 개발 사실을 발표했다. 지금은 인텔 CPU와 독자칩 M1을 동시에 활용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턴 20년 이상 거래 관계를 유지했던 인텔과의 '밀월'이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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