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역 실패 해놓고 왜 국민들이 희생해야 하나[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2-10 09:21   수정 2021-02-10 09:39


거리두기·집합금지 등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 정부가 확진자 수에만 매달려 이리저리 방역지침을 미세 조정하고 있지만 워낙 다양한 케이스에 맞는 방역지침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만큼 끊임 없는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하다

며칠전 수도권을 제외하고 9시 영업금지를 푼 것에 대해서도 수도권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가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일괄적인 집합 금지는 최소화한다는 방침아래 조만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이 모든 사태의 원인(遠因)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초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보면 당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만 시행됐다면 지금 국내 상황은 아마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부 규제나 통제에 비교적 순응적이다. 집단위기 의식을 느꼈을 때는 더 그렇다. 전 세계 어느나라보다 한국인들이 마스크 쓰기를 잘 실천하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초기에 'K방역' 소리를 들으며 비교적 코로나 급속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국민들의 이런 적극 협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인 대만도 비슷하다. 대만이 우리와 달랐던 점은 지난해 초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는 점이었다. 이후 대만은 계속 엄격한 방역지침을 시행, 전 세계가 인정하는 코로나 모범국이 됐다. 확진자 수는 1천명 아래이고 사망자는 9명(2월9일 기준)에 그친다.

뉴질랜드는 섬나라라는 특성에 대만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초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철저히 차단한 덕분에 대만과 함께 세계적 방역 모범국 소리를 듣고 있다. 9일 현재 감염은 1964명, 사망은 25명에 그치고 있다.

한국이 이들 나라처럼 지난해 초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비록 백신은 제 때 확보하지 못해 백신 접종에서는 선진국들보다 늦어지긴 했어도 확진자나 사망자 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겪는 극한의 고통 역시 상당부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방역모범국으로 K방역에 대한 전 세계 찬사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을 방역 모범국으로 치켜 세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데다 백신도 제대로 확보 못해 다른 나라들은 이미 접종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언제 시작될 지 불확실하기만 하다. 오늘까지 누적 확진자수는 8만명, 사망자는 1480명을 넘어섰다. 아마 초기 중국 입국을 막았더라면 확진자 숫자는 수천명, 사망자 숫자는 100명 아래도 억제됐을 수도 있다.

정부는 중국과의 교역을 감안해 입국금지를 안했다고 밝혔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중국발 입국을 금지하지 않은 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 잘했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수출의 4분의 1일 중국으로 가고 수입의 5분의 1이 중국으로부터 온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처구니 없는 소리다. 대만은 대 중국 수출의존도가 무려 30%지만 지난해 2월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정 총리가 발언했을 당시 국내 확진자수는 2만명도 안됐고 사망자는 300명대였다. 자영업자들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확진, 사망자 수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난 지금도 정 총리가 똑같은 소리를 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중국발 입국에 그토록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지난해말 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영국발 입국은 신속하게 막았다. 물론 지난 일을 다시 캐내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으면' 이라는 가정하에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주먹구구식 방역지침이라는 것에 너무도 많은 이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원인 제공은 정부가 해놓고 왜 그 댓가를 국민들이 치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정부가 마치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영업제한 거리두기 제한을 찔끔찔끔 풀고 조정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각종 코로나 지원책을 선거를 앞두고 써먹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은 괜시리 죄책감 같은 걸 느낀다고 한다. 내가 방역지침에 소홀했던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주변의 시각도 싸늘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좀 더 떳떳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리고 우리가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국가적, 지구적 재앙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다면 그건 정부가 무능해서이고 그런 정부는 탓해도 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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