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동 영등포전통시장. 제수용품을 마련하러 온 이들로 한창 붐벼야할 때지만 시장에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덕동 마포시장과 공덕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인들은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닫은 점포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같은 날 찾은 서울 신공덕동 이마트 마포공덕점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저마다 카트를 하나씩 끌며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로 마트 안이 북적였다. 계산대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고, 손님들의 카트에는 각종 과일과 채소, 육류 등 신선식품 등이 가득 담겨있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속적으로 대형마트를 규제하며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다. 유통업체들을 옥죄기 보다는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이마트 마포공덕점에서 만난 전업주부 안모씨(43)는 "전통시장에 발길을 끊은 지 10년이 넘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안씨가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위생이다. 시장에서 파는 신선식품의 상태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돌아본 전통시장 세 곳의 위생 상태는 대형마트에 비해 턱없이 열악했다. 일부 상점에선 채소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아스팔트 바닥에 늘어놓고 팔았다. 오토바이와 트럭이 지나가면서 날리는 흙먼지가 그 위로 내려앉았다. 신선도가 생명인 생선 등 어패류도 냉장시설 없이 상온에서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에 등을 돌린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시장의 비합리적인 가격 정책도 원인으로 꼽힌다. 영등포전통시장에선 상품에 가격을 표시해놓은 점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해야 하는 과정이 마트와 인터넷 쇼핑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경기 수원에 사는 은모씨(35)는 "상품마다 가격이 붙어 있는 마트가 익숙하고 편리하다"며 "굳이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일일이 가격을 물어봐가며 장을 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일도 있었다. 수산시장 상인이 고객이 구매한 횟감에 대해 '저울치기'를 한 동영상이다. 저울치기란 회를 담는 바구니 무게를 속이거나, 저울을 안 보이게 눌러 저울의 무게를 속이는 방식이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전모씨(32)는 "다른 건 몰라도 횟감은 수산시장에서 구매했었는데 최근 유튜브에서 '저울치기'를 하는 상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전통시장에 대해 더이상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부족과 일부 상인들이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행위 등 전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타필드와 롯데몰 등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매달 두 번 영업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복합쇼핑몰은 물론 백화점과 면세점까지 영업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을 내놨다.
오프라인 유통업계 규제를 넘어 온라인 유통업계에까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에 적용하고 있는 품목 규제와 영업시간 제한을 쿠팡과 마켓컬리 등 온라인 유통 플랫폼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면 소비자들의 편의를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프라인 유통망을 옥죈다고 전통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며 "전통시장을 살리려면 시장의 현대화 등 경쟁력을 살리는 방안을 추진해야지 애꿎은 유통업체의 팔을 비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