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장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보며 무심코 지나친 기업들의 기부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연말 연초, 명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기부 소식을 "해마다 같은 얘기"라는 생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기부 활동이 드러나길 바라는 몇몇 회사 관계자들에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더 가치있다"는 점잖은 핀잔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김 의장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지만 많은 기업들이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업에게 기부란 취약계층과 같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순수한 목적 외에 기업 브랜드를 알리고 절세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끔 지나친 보여주기식 기부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곳간을 내어주는 기부 행위는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말이죠. 과한 생색내기가 다소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오히려 북돋아 주고 응원해줘야 할 일입니다.
메일함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기업들의 기부 소식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눈에 띄는 기부 활동에 나선 기업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큰 피해를 입은 관광·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회사들입니다.
관광·마이스 업계는 지난해부터 1년째 이어진 코로나19 확산으로 '업의 종말'을 고민해야 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행과 호텔, 유원시설, 국제회의, 카지노 등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관광 업종의 코로나 피해 규모만 13조 원에 달합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온 코로나발(發) 공포와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콘래드 호텔은 설 명절을 앞두고 여의도 성모병원 선별진료소 의료진 100여 명에게 도시락을 전달했습니다. 이 호텔은 지난해 4월부터 매주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응원 도시락을 전달하는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있는 호텔들은 지난해 방한 외래 관광객과 비즈니스 출장 수요가 급감, 실적이 반토막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국내여행 열풍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린 강원, 제주 지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호텔은 이전부터 해오던 기부를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워커힐 호텔은 지난달 25일 광진구 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어르신 200여 명에게 도시락과 한과, 마스크 등을 전달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60명은 호텔 직원들이 일일이 집을 방문해 직접 물품을 전달하기까지 했습니다. 워키힐은 지역의 영세한 소상공인을 위해 기부물품을 지역 상점과 식당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잠실 롯데월드와 인사동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은 취약계층 아동을 지원하는 기부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롯데월드는 지난 8일 지역 취약계층 아동 100명에게 학용품과 손소독제, 마스크 등 11종의 물품이 담긴 '드림 온(溫) 박스'를 전달했습니다.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은 지난달부터 플랜코리아와 학대 아동을 지원하는 기부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가 플랫폼회사 야놀자는 이달에만 두 건의 기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야놀자는 지난 5일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굿윌스토어에 노트북과 데스크탑, 모니터 등 IT제품 100여 개를 기부했습니다. 이달 중에는 도서 220권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9일엔 강남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식료품, 생활용품이 든 나눔박스를 취약계층에 전달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1억 원의 성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 전시장 고양 킨텍스도 지역 취약계층 지원에 나섰습니다. 킨텍스는 지난 8일과 9일 도시락 3000개와 다과 2600개를 지역 장애인시설과 노인지원시설, 아동보호시설 등에 전달했습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도 지난 2일 강남구와 중구 저소득 독거노인 450명을 위해 명절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이름조차 낯선 한 지방 여행사는 지역에서 받은 100만원 재난지원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놨습니다. 전시주최회사 중에는 행사에 쓰려고 구입한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취약계층에게 전달한 곳도 있습니다. 일일이 다 소개는 못하지만 상당수의 관광·마이스 회사들이 어려운 와중에도 기부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나 자신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더 어려운 이들을 살피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서울 시내 호텔 관계자는 "기부 활동이 코로나 피해를 덜 입은 것처럼 보일 수 있어 한 해 건너뛸까도 고민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작은 도움이라도 절실한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규모를 줄이더라도 기부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비록 세상을 들썩일 정도의 통 큰 기부는 아니지만, 관광·마이스 업계의 '작은' 기부가 더 빛나고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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