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공장이 없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에 칩 생산을 맡기는데, 반도체업계에선 퀄컴 X65 생산업체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로 정해졌단 분석이 우세하다. 퀄컴의 스마트폰용 AP 주력제품 '스냅드래곤 888'에 이어 또 한 번 대규모 수주 계약을 따냈다는 얘기다.
퀄컴은 현재 스마트폰 제조사에게 스냅드래곤 X65 시제품을 공급하고 있고 '연내 양산'을 목표로 한다.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인 납품이 시작될 전망이다. 애플의 아이폰용 AP(모뎀칩, CPU, GPU 등을 통합한 반도체) 등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은 스마트폰용 모뎀칩과 AP 관련 세계 1위 업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퀄컴 매출은 179억달러(약 20조원)로 세계 5위를 기록했다. 퀄컴 앞엔 인텔(702억달러), 삼성전자(562억달러), SK하이닉스(253억달러), 마이크론(221억달러) 밖에 없다.
퀄컴은 설계만 담당하고 생산은 삼성전자, TS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에 맡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미국 애플과 함께 '큰 손'으로 불린다. 프리미엄 칩의 생산은 TSMC와 삼성전자 등을 동시에 활용한다. 최근엔 삼성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주력 제품인 '스냅드래곤 888' AP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5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공정에서 수탁생산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퀄컴이 X65 모뎁칩을 공개하면서 '외주 생산'을 어떤 파운드리업체가 맡았을 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퀄컴의 글로벌 모뎀칩 시장 지배력을 감안할 때, 퀄컴 외주생산을 맡으면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지난해 퀄컴과 엔비디아 등의 주력 칩 생산을 맡으면서 매출이 처음으로 15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의 주력 공정은 5nm 공정이다. 5nm는 선폭(트랜지스터 게이트의 간격)을 뜻하는데, 선폭이 얇을수록 초소형·저전력·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4nm 공정 기술 로드맵(계획)을 공개한 곳은 삼성전자와 TSMC 뿐이다. 해외 정보기술(IT) 전문 사이트들은 "퀄컴의 X65 모뎀칩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생산한다"는 게시물을 게재하며 삼성전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해 퀄컴의 핵심 칩들을 삼성전자가 수탁생산한 영향이 크다.
블로거들의 뉴스·리뷰를 전문적으로 싣는 사이트 '아난드테크'는 "X65와 X62(하위 모델) 모두 4nm에서 제조된다"며 "5LPE 공정을 개선한 삼성의 4LPE 노드(4nm 공정)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샘모바일 등 삼성전자 전문 블로그들도 아난드테크의 글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퀄컴 X65의 모뎀칩을 4nm 공정에서 생산한다"는 글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물론 이들 블로그나 전문 사이트의 글을 100% 신뢰하긴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까지 루머 수준의 글을 올리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이미 지난해 8월부터 "4nm 1세대 프로세스 개발이 진행 중이고 동시에 2세대 4nm 공정 기술 개발을 가속화한다"고 발표했다. 또 "2세대 4nm 공정의 PPA(Power Performance Area) 개선은 고급 공정 기술 제공에서 삼성의 리더십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TSMC는 그동안 4nm 공정의 양산 시기를 내후년인 '2023년'으로 꼽았다. 현재 TSMC를 이끌고 있는 마크 리우 회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지난해 6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TSMC는 2022년에 N5P(개선된 5nm 공정)를 출시하고 2023년에 N4(4nm 공정)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우 회장의 발언대로라면 TSMC는 올해 안에 퀄컴의 X65를 4nm 공정에서 양산할 수 없다.
물론 TSMC가 4nm 공정의 양산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대만에선 TSMC가 4nm 공장을 짓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텔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생산 스케줄은 올해 4분기 시범생산, 내년 본격 양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텔과 퀄컴의 제품이 각각 GPU, 모뎀칩으로 다르다, TSMC가 짓고 있는 4nm 라인은 '인텔 전용'일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는 X65 양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맡게됐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5nm, 4nm, 3nm 등 초미세공정 개발엔 속도를 내고 있지만 파운드리 '수율'(전체 생산량에서 양품 비율)이 경쟁사보다 낮다는 분석이 반도체업계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수율이 낮으면 계약을 따내도 영업이익 등 수익성은 악화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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