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차 제조 업체 테슬라가 법인 자금으로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한 데 이어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자사 제품 결제까지 허용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다른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상자산 시장에 호재가 잇따르며 비트코인 시세가 4만9000달러(약 5400만원)까지 급등하자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했던 기업들이 '대박'을 치는 사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IT(정보기술) 컨설팅기업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보유한 현금성 자산의 80%를 비트코인에 '몰빵'해 기업 가치가 크게 상승한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지난해 8월부터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해 현재 7만1079개의 비트코인을 보유중이며 이는 13일 기준 시세로 3조7247억원에 달한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비트코인 평균 매입단가가 1만6109달러(1779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시세(4만7268달러)와 비교해 볼 때 불과 수 개월 사이에 193%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비트코인 투자로 얻은 평가이익은 22억1475만달러(약 2조4459억원)에 달한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2019년 영업이익이 4억8600만달러(5367억원)였던 것을 고려하면 약 6개월간의 비트코인 투자로 5년치의 영업이익을 번 셈이다.
보유한 비트코인의 가치가 뛰자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주가도 덩달아 급등했다. 지난해 중순 120달러 전후에서 머물던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주가는 이번주 말 기준 1312달러까지 급등하며 10배 넘게 올랐다. 특히 올 초 글로벌 금융기업 모건스탠리가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지분의 10.9%인 79만2629주를 취득하면서 주가 급등에 기름을 부었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최고경영자(CEO)는 "기업 대차대조표에 유로나 달러 등의 법정 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매년 약 15%의 구매력을 잃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간단한 해결책은 일부 현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와 테슬라를 필두로 많은 기업들이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주요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다만 가상자산 관련 기업을 매수하거나 가상자산 결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는 등의 '우회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자동차 제조사 제네럴 모터스(GM)의 메리 바라 CEO는 지난 10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서비스 및 차량 구매 비용 결제 수단으로 가상자산을 채택할지 여부를 두고 계속 고객 수요를 모니터링 하겠다"고 말하며 여지를 남겼다.
최근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한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기업 페이팔도 직접적으로 현금으로 가상자산을 구매하지는 않을 예정이라 전했다. 존 레이니 페이팔 CFO는 "가상자산에 회사 현금을 직접 투자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최근 급성장하는 가상자산 시장을 기회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의 개발사인 모질라의 록시 웬 CFO는 "비트코인은 대차대조표에 추가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자산은 아니다. 다만 모질라가 비트코인 관련 초기 단계의 벤처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는 있다"면서 다소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회사 버라이존의 매튜 엘리스 CFO는 "현재는 비트코인 결제 수단 채택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비트코인 투자는 대차대조표에 리스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캇 헤란 시스코시스템즈 CFO는 "고객들은 비트코인 결제를 바라지 않는다"며 "예전 오토데스크 재직 당시 비트코인 결제 수단 도입 여부에 대해 논의했지만, 변동성 등 리스크로 인해 결국 추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네드 시갈 트위터 CFO 는 "트위터는 대차 대조표에 비트코인을 추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비트코인으로 급여 지급을 요청하는 경우 법인의 준비자산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대차대조표상에 비트코인을 넣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불할 수 있는지 등의 여부를 검토 중이다"라고 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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