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작품을 통해 매번 세상을 도발했다. 1980년대 초반 가족의 허상을 고발한 ‘가족사진’ 연작, 2009년 소시민들의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린 ‘베드 카우치’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20 울트라와 S펜이 작가의 새로운 캔버스와 붓이 됐다.
그가 주목한 것은 패션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패션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는 “사람들의 패션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육신은 빠져나오고 옷만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패션 화보를 수집한 뒤 앱으로 그 사진을 지우고 덧붙여 그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작가의 터치가 더해지면서 사람은 사라지고 옷과 신발만 덩그러니 남은 자리에서는 욕망의 허망함이 묻어난다.
디지털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친 터치는 새로운 손맛을 선사한다. 피처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원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터치로 뒤덮인 작품들에선 ‘역시 안창홍’이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디지털 액자를 통해 원본 사진이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선보이기도 한다.
안창홍의 시그니처인 ‘화가의 심장’은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인다. 이번 심장은 붉은 색이 아니라 순백색이다. 전시공간 한쪽에 마련된 ‘그림명상실’에서 편하게 주저앉아 새하얀 ‘화가의 심장’을 마주하고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그는 “제 작업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거부감이 있는 아날로그 세대에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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