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하는 이세희(24·사진)에겐 ‘태권도 DNA’가 심어져 있다. 아버지는 1985년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이선장 계명대 태권도학과 교수, 어머니는 육군사관학교 최초의 여성 교관을 지낸 박영숙 씨다. 이세희는 “자신만의 스윙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김세영(28) 언니가 롤모델”이라며 “세영 언니처럼 성공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영처럼 ‘태권 골퍼’를 꿈꾸는 이세희를 만났다.
5남매 중 둘째인 이세희는 남매들과 함께 태권도를 배웠다. 그러나 단증을 딸 때까지 태권도를 계속했던 다른 형제들과 달리 그는 중간에 다른 길로 샜다. 미국 플로리다대에 교환교수로 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간 뒤 우연히 골프를 접하면서다. 귀국 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골퍼의 꿈을 키웠다. 그는 “필드에 나가 멋있게 공을 치는 골퍼의 삶이 더 자유로워 보였다”며 “그래도 태권도를 배운 덕분에 골프 스윙 원리를 쉽게 깨달았다. 몸의 축을 세우고 빠르게 회전하는 태권도와 골프가 많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세희는 벌써 방송 등에서 러브콜을 받는 유망주. 하지만 데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9년 10월 정규투어 출전권이 보장되는 2부투어 상금 20위 문턱에 있던 그는 당시 시즌 최종전인 왕중왕전을 2위로 끝냈다. 하지만 스코어카드를 잘못 적어내 실격을 당했다. 그 결과 상금 순위가 20위 밖으로 밀렸고 결국 시드순위전에 끌려갔다. 결과는 또 탈락. 이세희는 “매일 수백 번씩 당시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겨우 추스르고 연습을 시작했지만 클럽만 잡아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2020시즌을 준비했다. 골프를 그만두면 미국으로 건너가 스포츠심리를 공부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1부투어 진출을 위한 네 번째 도전이던 지난해 2부투어 최종 성적은 상금 순위 4위. 영원히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던 왕중왕전에선 보란 듯 다시 준우승을 차지했고 당당히 1부투어에 입성했다. 이세희는 “두려울 게 없으니 소극적인 플레이가 공격적으로 변했고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며 “여태껏 부담감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발목에 채우고 있다는 것을 작년에 깨달았다”고 했다.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 길었던 이세희는 이제 꿈의 무대에서 실력을 마음껏 펼칠 작정이다. 이를 위해 ‘지옥의 훈련소’로 불리는 전남 해남 체력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3~4주만 있어도 선수들이 ‘야반도주’를 한다는 곳에서 이세희는 자진해서 훈련 기간을 늘려 7주를 버텼다. 이세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며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께 꼭 우승컵을 안겨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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