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책 강화에도 불구하고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길에서 흡연하는 행위인 ‘길빵’이 만연하고 금연 스티커 위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운다. 그들이 뿜는 매캐한 담배 연기에 비흡연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숨을 참으며 지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금연구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흡연구역 숫자다.
공공데이터 포털과 각 구청 정보공개청구 시스템을 통해 서울시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조사해봤다. 조사 결과 서울시 전체의 금연구역은 1만8134곳이었다. 한 구당 평균 697개다. 실내 흡연구역까지 포함하면 약 280만 개에 이른다.
반면 실외 흡연구역은 84개에 불과했다. 17개 구에는 관리하는 흡연구역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 속에 흡연자들은 인프라 부족을 지적해왔다. 국내 최대규모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한 회원은 “흡연자들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당당하게 피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지만 흡연구역이 거의 없다. 결국 도로에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대폭 확대된 금연구역과 이와 대비되는 부족한 흡연구역에 흡연자들은 골목과 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을 단속할 법적 조항은 없었다. 금연구역의 지정과 관리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4항에 따른다.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규제를 살펴보면 △PC방, 당구장, 음식점 등을 포함한 공중이용시설, △학교, 유치원, 도서관 등 지정건물, △버스 정류장, 지하철 역사, 기타 공공거리 및 공원으로 나눌 수 있다. 실외 흡연구역을 지정하는 마지막 항목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지정한다. 지정 금연구역에서 흡연 시 과태료 5만원 또는 10만원이 부과된다.
국민건강증진법은 금연구역을 지정했지만 흡연구역은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금연구역이 아닌 곳은 모두 흡연구역’이 된다. 지자체에서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곳 이외에서 ‘길빵’을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다. 간접흡연 피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길거리 흡연을 처벌할 조항이 없다. ‘금연 표지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단속할 근거가 없다. 조례로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 부착된 금연 스티커와 금연 팻말은 법적 위력이 없어 권고 수준에 그친다.
이런 이유로 금연구역은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흡연 민원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서초구의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지역을 통째로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서초구는 2020년 11월 2일부터 양재동 모든 곳이 금연구역이다. 면적 약 13㎦에 달하는 생활도로를 포함한 모든 공공도로를 금연구역화 했지만 서초구의 접근법은 기존 방식과 달랐다.
서초구청은 제도 시행의 준비 작업으로 두 달 간 주민 72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사전 간담회에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대표를 초대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양재동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함과 동시에 그간 주민이 자주 흡연해 온 장소에 흡연구역을 설치했다. 서초구에는 현재 양재1동과 2동에 각각 15개의 흡연구역이 지정돼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주변 상가와의 거리 접근성 등을 고려해 흡연구역을 정했다”고 말했다.
정책 시행 후 약 3달의 계도 기간이 지났다. 이윤구 서초구청 보건소 금연관리팀장은 “이번 정책은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며 “3개월가량 간접흡연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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