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경영인은 말과 행동이 사뭇 달랐다. 인터뷰 내내 “이제 다 살았다” “나 떠나고 나면…”이란 말을 했지만 행동은 젊은이 못지않게 민첩했고, 자세 또한 꼿꼿했다. 지금도 ‘오전 8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지키고, 신문과 TV를 통해 최근 뉴스를 꿰고 있는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사진). 구순을 맞아 회고록 《기억이 길이 되다》(비매품)를 펴낸 그를 15일 서울 창경궁로 보령제약 본사에서 만났다.
회고록에는 1932년 충남 보령에서 ‘흙수저’로 태어난 이야기부터 2019년 보령제약 창립 62주년을 맞아 예산공장에 62세짜리 느티나무를 심은 스토리까지 90개 꼭지가 시대순으로 담겼다.
가장 눈길을 끈 에피소드는 1966년 일본 제약사 류카쿠산으로부터 거담진해제 ‘용각산’의 기술 도입 계약을 따낸 얘기였다. 당시 가진 거라곤 황량한 논밭이었던 서울 성수동 공장터와 공장 설계도가 전부였지만, ‘해낼 수 있다’고 밀어붙인 끝에 ‘OK’를 받아냈다.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 보여주고 그리스 선주로부터 배를 수주받은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시점은 현대의 배 수주(1971년)보다 5년 앞선다.
하지만 보령이 내놓은 용각산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조악한 알루미늄 케이스가 품질 불신으로 번진 탓이었다. 김 회장은 이미 생산한 5만 갑을 전량 수거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연매출의 절반을 버리는 결정이었지만 김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업의 건강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눈앞의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거라고 봤죠.”
그랬다. 신뢰를 되찾은 용각산은 불티나게 팔렸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불량을 없애겠다”며 시중에 나간 휴대폰 15만 대(시가 500억원어치)를 모두 회수해 태워버린 ‘애니콜 화형식’을 벌인 건 이로부터 30년 뒤인 1995년이었다.
한국 기업사를 빛낸 두 거목과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달랐던 건 사업 다각화를 통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 삼성과 달리 보령은 제약·생활용품 분야만 팠다는 점이다.
“제 장점 중 하나는 주제파악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욕심에 어디 끝이 있나요. 저는 습관처럼 제가 뭘 하고 싶어하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제약)에만 집중한 거예요.”
그는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고혈압 신약 ‘카나브’ 개발을 꼽았다. 2011년 출시된 카나브는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블록버스터’급 신약이다. 김 회장은 “카나브는 20년 넘는 시간과 수백억원의 돈, 수많은 좌절의 대가로 얻은 끈기의 산물”이라며 “보령 회장 명함보다 카나브 PM(프로덕트 매니저) 명함이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후대 경영인에게 ‘척박한 시대에 신약 개발에 도전해 수많은 난관을 뚫은 경영자’로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기업은 기업다운 일을 해야 합니다. 제약사라면 신약을 개발해야죠. 남이 만든 약만 팔면 그건 유통회사 아닌가요.”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저는 요즘 청년들이 똑부러져서 좋아요. 하지만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면서 남 탓, 환경 탓하는 젊은이들은 못마땅해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잡는 건 아니에요. 오직 성실하게 준비해온 사람들의 몫입니다.”
글=오상헌/사진=허문찬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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