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m 이글 퍼트'로 역전 우승 일군 버거, 절친 스피스에 설욕

입력 2021-02-15 17:52   수정 2021-02-16 00:21


15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 최종 라운드가 열린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7051야드). 18번홀(파5)에 들어선 대니얼 버거(28·미국)의 뇌리에는 전날 이곳에서 범한 OB의 악몽이 스쳐갔다. 공동 선두로 쫓아온 매버릭 맥닐리(26·미국)와의 연장전을 피하려면 타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 버거는 핀까지 230m를 남겨두고 안정적인 길 대신 과감한 길을 택했다. 3번 우드로 강하게 친 공이 그린 앞 언덕에 맞고 굴러 핀 옆 9m에 붙었고, 버거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홀에서 이글 퍼트를 잡고 주먹을 움켜쥔 버거는 “3번 우드 인생샷이 나왔다. 맞는 순간, 우승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글쇼 펼치며 8개월 만에 우승
버거는 이날 이글 2개와 버디 4개, 보기 1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로 2위 맥닐리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 140만4000달러(약 15억5000만원)도 챙겼다. 버거는 지난해 6월 찰스 슈와브 챌린지 정상에 오른 이후 8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하며 투어 통산 4승을 달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도 12위로 끌어올렸다.

선두 조던 스피스(28·미국)에 2타 뒤진 공동 2위로 이날 경기를 시작한 버거는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며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2번홀(파5)에서 6.5m 이글 퍼트를 성공시키며 기선을 제압했다. 3번홀(파4)에서는 1.6m 버디를 잡아냈다. 이어 6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면서 순위표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컨드 샷 실수가 나온 8번홀(파4)에서의 보기가 이날 유일한 옥에 티였다. 후반 들어 10번(파4)과 14번홀(파5)에서 버디를 낚은 버거는 18번홀에서 이글 퍼트를 넣으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정보기술(IT)기업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주인 스콧 맥닐리의 아들이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재미교포 대니엘 강의 남자친구로도 알려진 맥닐리는 PGA투어 첫 승의 기회를 놓쳤으나 데뷔 최고 성적을 남겼다.
우승 문턱에서 또 주저앉은 스피스
1993년생인 버거는 동갑내기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미국),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와 함께 ‘포스트 우즈 시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4인방으로 주목받았다. 2015년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버거는 PGA 투어에서도 착실히 승수를 쌓으며 실력을 다져왔다. 밝을 줄만 알았던 그의 앞길에 먹구름이 낀 것은 2017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여행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스피스와의 연장전에서 패한 것이 독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손목 부상이 겹쳤고, 18개월 동안 톱10에 한 번도 못 들면서 세계랭킹은 152위까지 떨어졌다. 버거가 다시 우승컵을 드는 데는 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버거는 이번 대회에서도 스피스의 악몽에 시달릴 뻔했다. 스피스는 전날 3라운드에서 16번홀(파4) 샷 이글로 버거와 공동선두에 올랐다. 버거가 마지막홀에서 OB를 범하며 무너지자 또 한 번 스피스 우승의 들러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버거는 마지막 홀에서 스피스에게 4년 만에 설욕했다. 버거는 “18번홀에서 복수를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나는 최고의 재능이나 최고의 장타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스피스는 다시 한번 뒷심 부족의 한계를 노출하며 3년7개월 만의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피스는 이날 2타를 줄이는 데 그쳐 15언더파 공동 3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지난주 피닉스 오픈에서도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으나 마지막 날 72타를 쳐 공동 4위에 그쳤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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