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승계기구가 잘나가는 배경은 따로 있다. 일본에는 후계자가 없어도 PEF에는 회사를 팔지 않겠다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의외로 많다. PEF에 매각된 회사는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몇 년 뒤 또다시 팔리게 된다. 자식처럼 키운 회사가 몇 년 간격으로 두 차례나 생면부지인 인수자에게 팔려나가는 게 중소기업 경영자로선 맘이 편치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일본엔 기술승계기구처럼 ‘엑시트를 하지 않는 PEF’가 늘고 있다. 요시무라푸드홀딩스는 식품회사 20여 곳을 인수했다. 미치노리홀딩스는 지방 버스회사 등 교통 관련 중소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한다.
정책금융회사인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작년 말 설립한 사업승계펀드도 후계난을 겪는 중소기업의 승계를 지원하는 수단이다. 이 펀드는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는 등 경영에 뜻이 있는 젊은 인재에게 중소기업 M&A 자금을 댄다.
중기 경영자는 자신의 기업을 경영해보겠다며 손을 내미는 후계자의 면면을 보고 회사를 넘길 수 있다. 사업승계펀드 또한 고령의 중기 경영자들이 후계난 속에 외부 전문경영인을 들이는 데 저항감이 강한 점을 고려해 설계됐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여 년 전부터 가업승계난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승계제도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전액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특례사업승계제도’의 신청 건수는 2018년 제도를 도입한 지 2년 만에 10배로 급증했다.
M&A 자문사 레코프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승계 목적의 매각은 약 600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네 배 늘었다. 작년 상반기 후계난을 이유로 도산한 기업은 194곳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0%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더는 못 버티겠다”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과 비슷한 사업승계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성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피땀 흘려 키운 회사를 남의 손에 맡기기 꺼리는 중기 경영자의 심리까지 고려한 일본 사업승계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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