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전 금강 공주보 현장을 찾았을 때 그런 직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겨울철 갈수기이긴 해도 수문 3개를 활짝 열어놓은 탓에 공주보 수위(水位)는 사람 허리 높이도 안 돼 보였다. 2017년 하반기 평균 수위 8.5m였던 공주보의 풍부한 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고정보 앞에 넓게 형성된 모래톱이 강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보 인근엔 각종 주민단체 명의의 ‘해체 반대’ 현수막 10여 개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수질과 생태보호 같은 환경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근 유역 농민과 홍수 등 재난에 노출될 수 있는 주민에게는 보 철거가 생업과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강과 함께 지하수 수위도 내려가면서 당장 공주보 일대 지하수 수막재배(겨울철 보온재배법) 농가와 축산 농가에 ‘물 부족 비상등’이 켜졌다. 공주시 쌍신동의 파 재배 농가들이 지하수 고갈로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다른 용도로 돌렸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공주보해체반대투쟁위원장인 이계주 공주시쌀전업농연합회장은 “유명한 ‘우성목천 오이’도 물이 모자라 재배를 못 할 지경”이라며 “정부가 더 깊이 관정을 파주더라도 이웃 농가의 얕은 지하수 관정을 마르게 해 농민끼리 싸움을 벌일 판”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8~30m만 뚫어도 지하수가 콸콸 쏟아졌던 곳이 보 개방 뒤에는 150m까지 들어가는 중형 관정을 뚫어야 한다. 윤응진 공주시 평목리 이장은 “중형 관정이 고장 나면 크레인 기사를 불러서 고쳐야 하는 등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고 했다.
농민뿐만 아니다. 금강의 어민 10여 명도 줄어든 수량으로 정부에 어업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을 정도다. 공주보 인근 도선사업자들도 배를 못 띄워 수입 격감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해체 찬성 주민들은 보 철거로 강물이 깨끗해지면 더 좋은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지 않으냐는 주장도 편다. 서 국장은 공주보에서 예당저수지, 금강에서 보령댐으로 물을 보내 가뭄 피해를 막는 데 대해서도 “악화된 수질 때문에 예당저수지 등의 수생태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보 개방 뒤 수질 개선’ 주장의 핵심인 COD는 세종보와 공주보에서 미미하게 개선됐지만, 나머지 3개 보에선 오히려 악화됐다. 보 개방 이후 연도별로 COD 값이 심하게 등락한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수질 모니터링을 몇 년간 더 해보고 좀 더 유의미한 데이터를 축적한 뒤, 보 처리 방안을 정해야 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대강조사·평가위에 따르면 이 모든 검토 사항을 종합해도 세종보(2.92)와 공주보(1.08), 죽산보(2.54) 해체의 비용편익분석은 모두 1을 초과했다. 3개 보를 짓는 데 5000억원 넘게 들었고 다시 부수는 데 800억원 이상 예산이 투입돼야 하지만 수질, 생태, 유지관리비 절감에 물이용대책 비용까지 감안해도 보 해체의 편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이란 수자원을 적정하게 이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둬야 한다는 환경 근본주의적 발상이 4대강 보 해체와 재자연화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환경 가치를 보전하면서도 사회적 후생을 높이는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정부가 기울여야 하는데 더 이상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2019년 공주시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보 유지 및 수문 개방’(53.6%)과 ‘보 유지 및 수문 닫기’(21.2%) 의견이 다수였다. 일단 보를 부수지 말고 유지하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4대강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절실하다.
10여 년째 보 놓고 갈등…다음 정부까지 이어질 듯
2012년 완공된 4대강 사업은 단기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핫이슈였다. 감사원 감사만 네 차례 실시됐다. 준설계획의 타당성, 수질관리 적정성, 시공업체 담합 여부, 홍수 예방 효과 등을 광범위하게 들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강 재(再)자연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하자마자 6개 보의 상시 개방을 지시했다. 지금은 8개 보가 수문을 열고 수질 등을 측정하고 있다.
당초 낙동강 등의 보 처리 방안도 순차적으로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유역 농민들의 농업용수 고갈 우려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만만한 금강과 영산강 보만 해체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해체 결정이 난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 모두 구체적 시기는 환경부가 지역 여건과 주민 여론 등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했다는 점도 문제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으니 임기 내 가시적 성과는 보여줘야겠고, 지역민의 반대를 외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서 나온 결정이다.
시기 확정조차 쉽지 않아 최종 실행은 차기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 갈등을 정부가 적극 조정하기는커녕 정권마다 진영 논리에 갇혀 오락가락하는 사이 갈등 비용과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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