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는 소송’을 계속 맡기는 고객은 놀랍게도 정부기관인 관세청이다. 사람의 전신을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막겠다며 패소가 확정적인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9년 6월 리얼돌의 수입을 금지하는 건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다른 성인용품의 수입은 허용하면서 리얼돌만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사람 형상과 비슷한 성기구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소송을 제기한 수입업체의 리얼돌만 통관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금지했다. 리얼돌을 수입하고 싶은 업체는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라는 게 관세청의 입장이다. 예상대로 지난달 또 다른 업체가 제기한 1심 소송에서도 관세청은 패소했다. 관세청은 이에 불복해 이달 초 항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관세청을 상대로 한 리얼돌 소송전은 20~30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관세청의 조치에 행정력 낭비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온 사안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주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한 법조인은 “민간업체 괴롭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리얼돌 수입업체의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아홉 건 이상의 개별 리얼돌 통관 소송에서 관세청이 모두 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얼돌은 국내에서도 제조되고 있다”며 “수입 리얼돌만 막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업체들의 패소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청이 국민 세금으로 ‘지는 소송’을 계속하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소송 한 건에 최소 수백만원의 소송비용이 들고 1심에 불복해 2심까지 가면 금액이 또 추가된다. 한 리얼돌 수입업체의 승소를 이끈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세관에 ‘인지송달료를 포함한 460여만원의 소송비용을 업체에 돌려주라’는 결정을 냈다”고 소개했다.
관세청이 리얼돌 소송에 쓰는 비용은 노석환 관세청장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한다. 본지는 리얼돌 소송 비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냈으나 관세청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거부했다. 노 청장이나 담당 공무원이 사비로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지금과 같이 ‘져도 되는 소송전’을 계속 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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