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드론택시(UAV)를 개발한 중국 드론업체 이항(億航·Ehang)이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미국의 한 투자정보 업체가 이항의 기술 조작 및 허위계약 의혹을 제기하자 미국 나스닥에서 승승장구하던 이항의 주가는 하루아침에 60% 이상 떨어졌다.
이항이 ‘제2의 니콜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수소전기 트럭 업체 니콜라는 지난해 9월 공매도 투자자인 힌덴버그리서치에 의해 사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서울시가 이항의 드론택시를 들여오고 국내 투자자들이 이항에 6000억원 이상 투자한 상태여서 국내에서도 파문이 일 전망이다.
울프팩은 지난달 이항의 중국 광저우 본사와 공장, 납품 계약을 맺은 업체를 탐방한 뒤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울프팩은 보고서에서 “이항이 거액의 허위계약을 맺었을 뿐 아니라 드론택시 생산을 위한 기초적인 조립라인도 갖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울프팩이 가짜 계약으로 꼽은 대표적 사례는 상하이에 있는 호텔업체 쿤샹이었다. 쿤샹은 이항으로부터 5000억원 규모의 드론택시를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이 회사는 계약 체결 9일 전 설립됐다. 울프팩은 홈페이지 등에 나와 있는 쿤샹의 사무실과 호텔 주소를 찾아갔지만 세 곳 중 두 곳이 가짜라는 점도 확인했다. 쿤샹과 관련 없는 호텔이거나 11층 건물 자리의 13층 주소라는 점 등을 허위계약의 근거로 들었다.
울프팩은 또 “이항이 드론택시를 생산할 만한 업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광저우 본사엔 최소한의 보안시설도 없었으며 드론택시를 생산할 만한 조립라인과 설비도 부족해 보였다는 게 울프팩의 분석이다. 울프팩은 “이항의 주가 상승은 실제로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이항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더 관심 있는 고객과의 허위 계약을 기반으로 한 정교한 조작”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항은 2014년 후화즈 현 대표가 비행사고로 친구와 비행 코치를 잃은 뒤 “안전한 비행체를 만들겠다”며 설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2016년엔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택시인 ‘이항 184’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항은 세계 1위인 DJI에 이어 중국 2위 드론업체로 부상하며 2019년 12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주가는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4일 21달러에서 지난 12일엔 124.09달러로 1개월여 만에 6배로 폭등했다. 보고서 발간 직전인 15일까지도 122달러 선을 유지했다.
울프팩의 보고서가 사실로 판명 나면 이항 주가는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투자자들도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운영하는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16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은 5억5000만달러(약 6100억원) 규모의 이항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한 미국 주식 중 일곱 번째(상장지수펀드 제외)로 많다.
이항 드론을 구입한 서울시에도 불똥이 튀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17억원을 들여 이항 드론인 EH216을 이용한 실증행사를 열었다. 울프팩은 “EH216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유인 등급’을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이 기체는 특정 지역에서만 유인 운행이 가능한 시험 비행 허가를 받았다”며 EH216의 면허 획득 과정을 비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중국 출장길이 막혀 직접 실사하지 않고 중국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실시간 영상으로 기술력을 확인했다”며 “현지 에이전트에 연락을 취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박종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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