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 한편의 창성동 골목길에 자리잡은 카페 ‘온그라운드 갤러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족히 100년은 됐음 직한 오래된 목조건물의 대들보와 기둥을 만난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지붕의 골격을 유지하는 나무 널판이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지어진 적산가옥이 변신한 공간이다. 과거의 흔적들은 드러내기를 통해 현대적인 느낌의 실내 인테리어와 묘하게 어우러지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건축가인 조병수 BCHO파트너스 대표는 스스로를 “옛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건물뿐만 아니라 땅이나 나무처럼 오래된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의 30년 가까운 건축가의 삶에도 이런 관심이 투영됐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짓기보다 옛 공간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선호한다. 옛것에 대한 애착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재생건축’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일본인이 만든 적산가옥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최소 70여 년 이상 한국인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간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대대적인 재생공사가 시작됐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벽에 도배된 수십 겹의 종이를 떼어내다가 1914년 발행된 신문을 발견하기도 했다. 벽채와 천장 선이 안 맞아 수차례 조정하고, 벽을 뜯어내다가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기둥을 세우기도 했다. 조 대표는 “지붕 위 기와를 들어내니 나무 널판이 나타났다”며 “그 위에 유리를 덮었더니 빛이 기가 막히게 쏟아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온그라운드는 2015년 건축 갤러리로 문을 열었다. 이후 두 번째 재생공사를 거쳐 지난해 5월 카페로 새 단장했다. 곧이어 바로 앞에 자리잡은 빌딩 1층의 작은 서점 공간까지 연결하는 작업에 나섰다. 벽 4개를 뚫어 각각 분리돼 있던 공간이 소통되도록 했다. 중정은 막혀 있던 천장을 뚫고 나무를 심어 새롭게 조성했다. 비 오는 소리, 흙내음 같은 자연의 감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봄과 가을에 온그라운드의 모든 창을 열어놓으면 바람 소리가 휭휭 날 정도로 시원하게 바람이 통합니다. 공간과 공간의 소통이 이뤄졌고, 이 공간은 카페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죠.”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조성된 ‘F1963’은 덧붙이기 방식을 활용한 대표적 건축물이다. 고려제강의 공장이었던 이 건물은 옛 형태와 골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중간 부분은 잘라내 넓은 중정을 조성했다. 입구에는 그물 모양의 하늘색 익스팬디드 메탈을 덧붙여 2016년 완전히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선보였다.
성남시 금곡동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금곡동 15-1’은 근린생활 건물 두 채를 묶어 ‘씨디에이’라는 기업 사무실로 바꿔낸 작업이었다. 붉은색 익스팬디드 메탈을 덧붙여 두 건물을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했다. 네덜란드의 디자인 매거진 ‘프레임’이 출간한 책에도 소개될 만큼 주목받았다.
조 대표는 새로운 재생건축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온그라운드 건너편 100년 이상 된 한옥을 매입해 건축 갤러리로 조성하는 작업이다. “이 재생건축물은 ‘막그라운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막사발이 주는 편안함처럼 ‘막’의 아름다움을 구현해보겠다는 뜻을 담았죠. 다음달까지 재생 작업을 마무리하면 서촌, 재생, 미학을 주제로 축적된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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