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끝없는 중국 '짝퉁' 논란

입력 2021-02-18 17:52   수정 2021-02-19 00:10

아편전쟁 이후 중국 각지에 잠입해 차(茶)나무 묘목을 영국으로 빼돌렸던 식물학자 로버트 포천은 중국의 시골마을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영국에서 진한 푸른색 녹차가 인기를 끄는 것을 노린 중국인들이 각종 잎을 정체불명의 염료로 물들여 ‘짝퉁 녹차’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포천의 ‘발견(!)’ 이후 영국인은 더는 녹차를 찾지 않았다. 홍차가 영국의 대표 기호품이 된 계기다.

‘짝퉁’은 중국인의 삶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모방한다’는 뜻에서 출발한 ‘모범(模範)’이란 단어가 ‘본받을 대상’이라는 지향할 가치로 확장된 것처럼 중국인들은 전대의 제도와 물품을 베끼는 것을 높게 쳤다. 이 과정에서 골동품, 서화부터 각종 식품까지 진품과 구별하기 힘든 ‘가품(假品)’이 속출했다. 송대의 《태평광기(太平廣記)》나 청대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같은 설화집에는 ‘가짜 술’, 진흙으로 만든 오리구이 같은 모조품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현대에 와서도 ‘짝퉁’은 중국 문화와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해 해외 제품을 거리낌 없이 복제했다. 이를 두고 ‘도둑놈 소굴’에서 유래한 ‘산자이(山寨·짝퉁)’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대도시마다 산자이 전용상가가 성업했다. 의복 시계 휴대폰 화장품부터 심지어 택시 버스까지 산자이 제품이 속출했다. 그 와중에 가짜 식품과 분유는 인민의 삶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짝퉁’은 실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리커창 총리가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중국 GDP를 신뢰할 수 없다”(위키리크스 공개 문건)고 토로했듯, 중국의 정부통계도 끝없이 의심받는다.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던 루이싱커피가 지난해 대규모 회계부정을 자행한 게 드러나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중국발 ‘짝퉁’ 의혹이 얼마 전 서울시가 ‘비행(드론)택시’ 제조업체로 소개하며 시연회까지 열었던 ‘이항’이란 드론업체로 번졌다. 이항이 거액의 가짜 계약을 맺고 기초적인 생산시설도 갖추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나스닥시장에서 그제 62%(주당 78달러) 급락한 것이다. 이에 이항 측이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68%(31달러) 반등했지만 여전히 시장은 미심쩍어한다. 중국과 관련해 ‘짝퉁’과 ‘진짜’를 구분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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