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커졌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에 대한 인식도 덩달아 나빠졌습니다. 사모펀드 제도를 손질해야 할 때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저는 '사모'펀드 사태인데 피해자가 어떻게 수천명이 될 수 있었을까 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6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 주최로 '금융 소비자 보호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사모펀드 규제 합리화 방안'이라는 온라인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날 이수환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사모펀드 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입법방안을 아래의 표와 같이 제시했습니다. 요컨대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사모펀드 규제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사모펀드 규제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를 다르게 규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기 스스로 전문성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와 그렇게 하기 어려운 개인투자자로 구분하고, 기관에는 보다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되 개인에게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 조사관의 발제 내용은 유튜브(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이날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저는 이 조사관의 발제 내용에 찬성하며 그 방안이 라임 및 옵티머스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모의 공모화'가 라임사태 원인
먼저,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원인을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 원인은 '사모의 공모화'에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사모펀드제도는 미국의 private equty fund를 모델로 도입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원칙이 근저에 깔려 있습니다.
첫째는 기관 중심입니다. 기관투자자는 투자판단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정보비대칭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때문에 보호할 실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모 한정입니다. 일반 대중을 향해 ‘청약의 권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즉 사모(Private placement)의 경우에는 증권법상 투자자 보호의 실익이 적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private equty fund는 이러한 두가지 원칙의 교집합에서 자생한 제도이고 지금은 미국의 금융시장의 핵심적인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미국의 private equity fund가 우리나라의 라임/옵티머스펀드와 유사한 대규모 투자자 보호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두가지 원칙이 잘 지켜졌고, 이 원칙의 범위 밖에는 증권법을 통해 철저한 투자자 보호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미국식 PEF제도의 두가지 원칙에 따라 2005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도 기관투자자가 중심이 되도록 제도를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기관투자자들만을 대상으로 소수의 LP만으로 구성되는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자본시장법은 기관투자자가 전문성에 기반하여 사모펀드의 GP를 철저하게 감독할 수 있다고 보았고 현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시장은 당초 이러한 법 원칙에 맞게 투자자보호 규제가 없이도 LP에 의한 GP의 자율적 통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PEF 시장은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 교직원공제회를 포함한 공제회,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기관투자자가 사모펀드운용사를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면서 스스로 투자자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라임/옵티머스사태같은 경우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도입하며 원칙 흔들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에 있어서는 이러한 두가지 원칙이 흔들리게 됩니다. 첫째, 개인투자자가LP로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펀드 관리 감독의 전문성이 없는 개인들로만 이루어진 사모펀드가 나오면서 ‘기관 중심주의’가 흔들립니다. 둘째, 은행 Private banking과 증권사 판매창구에서 사모펀드지분의 판매까지 허용되어 다수의 개인투자자에게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사모 한정주의’가 깨졌습니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를 관리감독할 능력이 없는 다수의 파편화된 개인으로 펀드가 이루어지게 되자, 탐욕스러운 사모펀드 운용사가 이러한 기회를 틈타서 부정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모의 공모화'가 이루어져 공모펀드와 동일하게 된 것인데,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공모펀드에 적용되는 다양한 투자자 보호규제가 적용되지 않은 데 따른 것입니다. "사모" 펀드 사태인데 피해자가 수천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사모펀드에는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 없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방법은 명확합니다. 첫째로는 공모규제의 엄격한 집행입니다. 어떤 금융상품이건 간에, 금융투자업자(은행 포함)가 창구에서 판매권유를 하는 순간 이는 공모로 봐야 하고 공모에 대한 모든 투자자 보호를 적용해야 합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청 약의 권유를 받는 사람의 수에 따라 사모와 공모를 구별합니다. 증권사 창구에서 판매 하면 청약의 권유를 받는 사람의 수가 50인 이하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공모로 보고 투자자 보호 규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모펀드가 은행 창구에서 판매되는 순간 공모펀드로 변한다는 겁니다. 사모펀드지분은 LP와 GP간에 협상의 대상 이지, 판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모펀드에는 불완전 판매가 있을수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공모를 집행하면 사모의 공모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사모 펀드이면서 투자자수가 수천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 조사관이 주장한 바와 같이 사모펀드의 투자자 구성에 따라서 규제를 차등화하는 입법이 필요합니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의 핵심은, 파편화된 소액 투자자인 개인들로만 펀드가 구성되다 보니 사모펀드운용사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LP가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사모펀드법제는 자산운용 대상에 따라 사모펀드를 경영 참여형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나눠서 각각 다른 규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관투자 풀어주고 개인투자는 보호해야
이처럼 운용대상을 중심으로 규제를 차등화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러한 법제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모펀 드운용사를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LP들이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나눠서 규제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한 명이라도 참여하는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보다 강도 높은 투자자 보호 규제를 적용해서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반면, 순수 기관투자자만 으로 구성된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 이니,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풀어서 사모펀드가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더 잘할 수 있 게 해주어야 합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발생한 현 시점에서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 방향은 사모펀드 규제완화가 아니라 라임/옵티머스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사모펀드 체제 개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사모펀드는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규제가 합리적으로 손질되어 향후 자본시장이 건전하게 투자자와 기업들을 도울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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