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계의 오랜 숙원인 차등의결권 도입 방침을 정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원래 11월 말까지 처리한다는 일정이었으나 여당이 상법 공정거래법 중대재해법 등 기업 규제 입법에 ‘올인’하느라 뒷전으로 미뤄버렸다. 이번에 쿠팡 이슈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늦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간 벤처기업인들은 소규모로 창업한 뒤 투자금을 유치할 때마다 지분율이 쪼그라들어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만큼 여당이 뒤늦게나마 차등의결권 도입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반(反)기업 성향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의식해 갖은 ‘족쇄’를 채워 실효성이 크게 반감될 판이다. 대상을 ‘비상장 벤처’로 국한하고, 상장 후 유예기간(3년)이 지나면 보통주(1주 1의결권)로 전환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는 ‘주주의 사적이익 편취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달았다지만, 상장사라고 해서 경영권 약화에 대한 우려가 없을 리 없다. 미국이 상장·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사실상 자유롭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도 대비된다. 지분을 30% 이상 소유한 최대주주(등기이사)에게만 부여할 수 있어 혜택을 볼 기업인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갈라파고스 규제’와 코로나 사태 여파로 조선·철강 등 기존 주력산업은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 사이 테크업종을 중심으로 한 혁신기업과 기업인들이 경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들이 적극적 사회환원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을 통해 사회에 일으키는 긍정적 반향도 크다. 이런 변화를 이어가려면 정부가 혁신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성장 유인책’도 화끈하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규제 만능주의’에 갇혀 있다간 쿠팡처럼 ‘탈(脫)한국’을 택하는 기업이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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