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뜬구름 잡는 '특단의 공급'

입력 2021-02-21 17:05   수정 2021-02-22 00:13

전갈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독침이 무서운 개구리는 망설였다. 전갈은 독침을 찌르면 자신도 물에 빠져 죽게 된다며 개구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찔렀다. 죽어가던 개구리가 왜 그랬냐고 묻자 전갈은 말했다. “나는 전갈이고, 그게 내 본성이야.”
주는 것보다 뺏는 게 커보여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예고한 대로 ‘2·4 부동산 대책’은 ‘특단’의 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공급 규모가 무려 전국 83만6000가구다. 2018년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대책을 뛰어넘는 메가톤급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정말 공급 확대로 바뀐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역세권, 저층 주거지 등의 개발을 위해 용적률과 층수 상향 등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그동안 개발이 안 되던 곳을 되게 하려면 새로운 유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무거운 추’가 달려 있다. 개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내놓아야 한다. 물론 적정한 개발 이익 환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빽빽한 고밀 개발과 임대 건립 등에 따른 무형의 손실까지 감안했어야 했다. 사업 추진 방식이 비슷한 공공재건축·재개발이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개발 사업은 이익을 다 준다고 해도 언제 될지 기약하기가 힘들다. 같은 역세권에 있는 상가라고 해도 장사가 잘되는 곳, 안 되는 곳이 함께 있으니 합의가 쉽지 않다. 당초 계획보다 10년 이상 사업이 지연된 뉴타운도 적지 않다.

공공 주도 재건축에 초과이익환수와 2년 실거주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인센티브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둘 다 이전 정부에서는 없던 규제다. 이 족쇄를 없애줄 테니 민간에서 재건축해보라고는 왜 못 할까. 주공아파트 짓던 1970년대도 아니고, 민간이 우주선까지 쏘는 시대에 왜 공공이 직접 개발을 하겠다는 것일까.

이번에도 정부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이익 환수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반발과 우려가 쏟아졌지만, 대책 발표일 이후 매입한 주택은 공공 주도 개발 때 현금 청산한다는 방침이 굳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임대사업자 혜택 등을 손바닥 뒤집듯이 없앤 정부다. 서울시장 선거가 임박했고, 대통령 선거도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기다린 세월이 얼마인데, 정부가 요구하는 이익을 다 내놓으면서 개발하겠다는 곳이 얼마나 될까. 강남 등 입지가 좋은 곳은 정부가 제시한 ‘썩은 당근’을 절대 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2·4 대책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뜬구름 잡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성공해도 강남·마포 대체 못해
정부 바람대로 83만여 가구 공급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 시기는 빨라도 3, 4년 뒤다. 역세권 등의 주택 수요는 분명 있겠지만, 학군 좋고 쾌적한 강남이나 마포 같은 인기 주거지역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전문가들이 재건축 규제 좀 풀라고 목이 쉬도록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재건축을 그렇게 조였는데도, 이번 정부 들어 집값이 왜 천정부지로 오른 것인지 이제 곱씹어볼 때도 됐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아무리 많은 단추를 채워도 결국 마지막 구멍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해결책은 힘들지만 다시 풀고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 것이다. 정책이 아니라 선거 공약 같은 2·4 대책은 개발이익 환수에 집착한 또 다른 잘못된 단추일 뿐이다.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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