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웃돈'까지…혼돈의 폐지시장

입력 2021-02-21 17:37   수정 2021-02-22 00:38


“폐지 100t 기준으로 웃돈 1000만원, ㎏당 20원 더 줄게요.”

지방에서 대형 폐지 압축장을 운영하는 이모 대표는 요즘 계산기를 끼고 산다. 납품가에서 구매가를 빼면 얼마가 남는지 확인해야 해서다. 그만큼 폐지 가격이 변화무쌍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웃돈을 주고 ㎏당 가격도 올리는 것으로 확답을 받았는데 가격을 좀 더 준다는 다른 곳에 폐지를 빼앗겼다”고 푸념했다. 그는 “폐지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 텐데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폐지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급난이 제지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까지 벌어지면서 웃돈이 오가는 등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폐지업계에 따르면 국내 폐지 평균 재고는 약 3일치로 떨어졌다. 예년 평균(7~8일)의 절반이 채 안 된다. 한 폐지 유통업체 대표는 “베이징올림픽(2008년) 당시 중국에서 폐지를 빨아들여 폐지 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던 때 재고가 4일치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규제가 폐지 수급난을 심화시키는 주 원인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분기 재고가 넘치던 당시 규제 입법에 착수했다. 이후 수입폐지 통관 전 전수조사(작년 3월), 폐지 수입신고제(7월), 혼합폐지 및 폐골판지 수입규제안 포함(12월) 등 공급 축소에 초점을 둔 정책을 연이어 시행하거나 확정했다. 이 여파로 폐지 재고는 작년 3월 약 11만t에서 6월 6만t으로 줄어들면서 수급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9월엔 4만t 선까지 줄었다. 반면 2월 4000t 정도였던 폐지 수출량은 3월 2만t을 넘긴 데 이어 6월엔 4만t으로 불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폐지 재고는 작년 1분기에만 과잉이었을 뿐, 수출이 늘어나고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택배 증가로 상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세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계가) 여러 차례 수급난이 올 수 있다고 읍소했지만 환경부는 ‘폐지 과잉’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쓰레기 대란 등을 막는다는 취지로 폐지 공급을 더 줄이는 규제가 추가로 예정된 게 더 큰 문제다. 당장 2분기부터 폐지 실수요자인 제지사는 폐지를 수입할 수 없다. 폐기물처리업자만 폐지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4월 1일 시행된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제지사가 아닌 폐기물처리업자만 폐지를 수입하도록 허용하는 정책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내년 1월에는 분류되지 않은 혼합폐지의 수입을 제한하는 규제가 시행에 들어간다. 이런 규제들이 이어지면 골판지 부족에 따른 박스대란을 넘어 전반적인 종이대란이 올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연간 생산되는 종이제품의 폐지 사용 비중은 80%가 넘는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수출은 가만히 둔 채 수입만 줄이는 정책이 수급난을 만성화·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진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교수는 “종이는 계속 재활용을 해야 하는데 수입만 줄이면 재활용 가능 물량이 줄어 수급난이 심화하고 폐지 질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폐지는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 될 수 있다”며 “폐지 정책 역시 정부가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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