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새해부터 장시간 근로 관행이 화두로 부상했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주일에 6일씩 일한다는 의미다. 2019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은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715’는 이보다 더 나아가 하루에 15시간씩 1주일 내내 일한다는 뜻이다.
작년 말부터 중국에선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의 한 직원은 새벽 1시 넘어서 퇴근한 직후 쓰러졌다. 올초에는 이 회사 개발부문 직원이 자택에서 투신했다. 또 알리바바 계열 음식배달업체 어러머의 배달직원 두 명이 차례로 숨졌다. 모두 과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중국에서 장시간 근로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중국 정부는 ‘996은 불법’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체제 유지가 지상 과제인 중국 지도부는 여론을 민감하게 살핀다. 하지만 노동시장 제도 개선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중국 지도부가 여전히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국은 2019년에서야 1인당 국내총생산 1만달러를 돌파했다. 이제 겨우 중진국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정부가 노동시장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베이징에 있는 한 로펌의 노동전문 변호사는 “한 나라의 경제활동인구가 모두 참여하는 노동시장에선 사소한 제도 변화에도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1994년 노동법을 제정하면서 주 40시간(주 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연장근로를 포함한 1주일 법정근로시간은 최대 66시간이다. 이 틀을 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노동법 개정은 2008년과 2018년 단 두 차례 이뤄졌다.
한국도 예전엔 그랬다. 주 40시간(주 5일) 근로를 도입할 때를 보자.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2003년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2004년부터 기업 규모별로 적용해 2011년에야 마무리했다. 1주일 근로시간을 4시간 줄이는 데 도입에만 7년, 논의까지 합하면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후 충분한 완충장치 없이 내놓은 정책들은 어김없이 고용참사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는 노동계도 놀랄 정도로 전격적으로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법 제정 당시 8%였던 청년실업률은 법 시행 시점인 2016년 10%대로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장을 실험실로 만들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취약계층 일자리만 날리고 3년 만에 엎어졌다. 1주일 법정근로시간을 16시간이나 줄이는 주 52시간 근로제에는 고작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최소 5년은 필요하다는 기업들의 호소는 철저히 묵살됐다.
이런 노동정책에 담긴 선의(善意)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그 파급력을 고민하는지는 의심스럽다. 국민의 돈으로 국민 위로금을 준다는 발상을 하는 정부는 더욱 믿기 어렵다.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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