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멀고 먼 '미얀마의 봄'

입력 2021-02-22 17:56   수정 2021-02-23 00:52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지 벌써 4주째로 접어들었다. 전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와 파업으로 현재까지 최소 4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치는 등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이번이 세 번째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다 1962년 3월 네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우누 총리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26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네윈은 1988년 이른바 ‘미얀마의 봄’ ‘8888 민주화 항쟁’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해 9월 국방장관 소우마웅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1988년부터 가택연금됐던 아웅산수지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2016년 3월 민간에 의한 민주 정부를 탄생시켰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아웅산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지지율을 더 높이며 하원 58.6%, 상원 61.6%를 차지했지만 이번 쿠데타로 그는 국가고문 자리에서 실각하고 다시 구금되는 신세가 됐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빈발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군대가 갖는 특별한 지위 때문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도한 것은 현재 미얀마 군의 전신인 버마독립군이었다. 당시 청년 ‘30인의 동지’가 독립군을 이끌었는데 그 지도자가 바로 아웅산수지의 부친인 국민 영웅 아웅산 장군이다. 독립 후 총리를 맡은 우누, 첫 쿠데타를 일으킨 네윈 역시 여기 소속이었다.

군부는 독립 후 2015년까지 사실상 국가 통치기구였다. 헌법에 의해 의회 의석의 25%를 할당받고, 국방·치안 관련 부처도 장악했다.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이 나라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내전과 종족 간 분쟁을 무력으로 제압, 국가 통합을 유지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 것도 군대였다.

아웅산수지가 늘 군부와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그 역시 군부와 상생관계를 유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아웅산 장군과 군의 관계도 그렇고, 수지 역시 민주화 이후 군부와 결탁해 소수민족인 로힝야인을 탄압하며 정치적 이득을 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쿠데타는 지지율이 너무 높아진 민간 정부와 군부 사이의 권력 밸런스를 조정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군부는 미얀마에서 아직까지는 ‘필요악’ 같은 존재이며 딜레마이기도 하다. 진정한 ‘미얀마의 봄’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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