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꽃이란 이름을 지니고 살지만 동백의 절정기는 봄이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6개월 남짓 피었다 지기를 거듭한다. 그래서 개화 시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가을에 피는 꽃은 추백(秋柏), 겨울에 피면 동백(冬柏), 봄에 피는 꽃은 춘백(春柏)이다. 겨울 동백은 단아하고 정갈한데 봄 동백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온 힘을 다해 벌 나비들을 유혹하려는 요염한 자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꽃받침 가득 꿀물이 흥건하고 봄 동백의 숲엔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 오죽하면 새들까지 꿀을 찾아 날아들까. 그래서 파리 사교계의 여인 마르그리트 고티에도 한 달 내내 밤이면 고혹적인 이 꽃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는 카멜리아(동백꽃) 여인으로 불렸다.
봄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여수의 남쪽 섬 거문도는 요즘 한창 불타오르는 봄꽃들의 정념으로 뜨겁다. 매화와 동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 잔치가 벌어진다. 해쑥이며 청보리, 달래, 냉이 등이 쑥쑥 자라는 들판도 한껏 푸르다. 꽃들의 잔치판에서도 거문도 봄꽃의 대명사는 동백이다. 숨죽여 귀 기울이면 겨우내 한껏 움츠렸던 동백꽃 피는 소리가 축포 터지듯 요란하다. 거문도 최고의 동백 성지는 영국군 수병 묘지 가는 길이다. 간혹 꿀을 찾아 날아든 동박새를 포획하기 위해 미끼용 밀감을 넣은 새장이 걸려 있을 정도로 동백이 지천이다.
오랜 세월 섬은 외롭고 척박했다. 그렇다고 낭만이 다 얼어 죽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1년에 한번 그 고단한 섬살이를 이겨낸 기념으로 섬 여인들은 동백의 시절이면 동백꽃으로 목욕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었다. 오래전부터 거문도에서는 동백꽃 우린 물로 목욕하는 풍습이 있었다. 동백꽃 물로 목욕하면 종기가 치료되고 피부병을 방지할 수 있어 피부 미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백 화장품으로 미를 가꾸는 현대 여인들과 다를 바 없는 믿음이 아니었던가! 동백은 주술적인 힘을 지닌 신목(神木)으로도 여겨졌다. 동백나무 가지로 여자의 볼기나 엉덩이를 토닥여주면 그 여자는 사내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을 묘장(卯杖) 또는 묘추(卯錐)라 했다. 동백은 신비한 생명의 나무였던 것이다.
영국군 수병 묘지 부근 동백나무에서는 꽃들이 곧 날아갈 태세다. 꽃 진다 슬퍼마라. 꽃이 지는 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승천(昇天)하는 거다. 꽃들의 승천이 난무하는 섬 마을의 봄날. 동백 숲에 꽃 사태가 났다. 저 장렬한 동백의 기습에 무너지지 않을 철벽의 가슴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거문도는 여수의 섬이지만 하나의 섬이 아니다. 3개의 섬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인접해 있는 3개의 섬 고도, 동도, 서도를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서도가 가장 크고 동도, 고도 순이다. 지금 3개의 섬은 다리로 연결돼 한몸이나 다름없다. 두세 개의 섬을 묶어서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제주의 추자도와 통영의 사량도가 또한 그렇다. 상도, 하도 나란한 두 개의 섬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한 뒤 포트 해밀턴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이던 해밀턴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니 제국주의 세력의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 아닌가! 영국군은 항만 공사를 하고 막사 등을 지어 주둔하며 군인들의 여가를 위해 테니스코트와 당구장도 만들었다. 그래서 고도에는 이 나라 최초의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당구가 처음 도입된 곳도 거문도다. 그래서 거문도에는 당구 1000을 치는 할머니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떠돈다. 전기와 통신도 영국군에 의해 거문도에 최초로 도입됐다고 전한다. 공식 기록상 최초의 전기는 1887년 경복궁 후원 건청궁 앞에서 점등됐다고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거문도가 앞선다고 전해진다. 거문도에는 최초가 많다.
거문도 점령 당시 섬 주민과 영국군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민들에게 의약품을 공급하고 항만공사 때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영국군의 유화 전략이었겠지만 조선왕조에서 강제 부역과 수탈을 당해왔던 섬 주민들에게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군에게 거문도 반환을 요구하러 협상차 찾아온 조선 정부 대표 엄세영에게 섬 주민들은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노임 받고 일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거문도의 또 다른 동백 군락지는 서도의 거문도 등대 가는 길이다. 등대가 있는 곳은 수월산인데 ‘무넹이’로 서도와 연결돼 있다. 무넹이는 물넘이다. 좁고 낮은 길목으로 이어져 있어 태풍이나 해일 때면 바닷물이 넘나든다 해서 무넹이다. 무넹이를 건너 등대 가는 길에는 동백나무뿐만 아니라 후박나무, 가마귀쪽나무, 자금우 등 다양한 상록수가 줄지어 서 있다. 내륙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들이니 이 또한 이채롭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4월 일제가 대륙 침략의 불길을 밝히기 위해 설치했지만 지금은 어선들의 안전을 수호해 주는 생명의 등대다.
거문도에서 잊지 말고 꼭 걸어봐야 할 길이 장촌마을 녹산등대 가는 길이다. 장촌에서 녹산등대까지 이어진 초원의 길은 더없이 평화롭다. 거문도의 관문을 지키는 녹산등대의 풍경은 이국의 정취를 한껏 더해 준다. 장촌 마을은 기원전부터 사용된 중국 한나라의 화폐 오수전이 다량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거문도가 2000년 전부터 국제 해상 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다.
거문도는 남녘에서도 봄이 먼저 도달하는 곳이니 쑥도 그 어디보다 일찍 자란다. 장촌 마을에는 봄기운 가득 담은 쑥으로 수제 막걸리를 빚는 집도 있다. 해쑥을 먹으면 1년 내내 잔병치레가 없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해풍을 견디고 솟아난 거문도 해쑥은 그래서 봄의 거문도가 주는 보약이다.
한국에서 가장 빼어난 3대 해상 절경을 꼽는다면 신안의 홍도, 옹진의 백령도 두무진, 그리고 또 하나가 거문도의 부속 섬 백도다. 거문도에서 출항하는 유람선이 백도 여행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니 느릿느릿 오는 봄을 맞으러 뱃놀이를 떠나 보는 것도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백도를 유람하다 보면 “백도를 구경하지 않았다면 거문도 여행을 안 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제윤 < 시인(섬학교 교장) gilgu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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