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호불호가 분명했던 프랑수아가 가장 잘 친 작곡가는 드뷔시와 라벨, 쇼팽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베토벤, 브람스는 연주 빈도가 낮았다.
EMI 시절 발매된 프랑수아의 작품집은 드뷔시와 라벨이 3장씩 6장의 CD로 구성됐다. 프랑수아는 만년까지 드뷔시에 심취했다. 사망 당일에도 드뷔시 전곡 녹음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전주곡집 2권과 에튀드를 완성하지 못한 채 아까운 나이 46세에 별세했다. 전주곡 중 ‘아마빛 머리의 소녀’ ‘가라앉은 성당’ ‘음유시인’ 등에서 번득이는 표현은 밤에 듣는 재즈 피아노 같다. ‘어린이 차지’는 그 즉흥적 생동감이 뺨의 홍조처럼 떠오르는 연주다.
라벨 작품들은 어떨까. 앙드레 클뤼탕스가 지휘한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피아노 협주곡은 화사한 음악적 성격을 잘 드러낸 독특한 연주다. 곡의 구성을 벗어날 만큼 홀가분하면서 치열하고 신선하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역시 즉흥성이 번득이는 광시곡풍이다. 피에르 바르비제와 투 피아노로 연주한 ‘어미거위’는 색채감의 표현에 능한 두 연주가가 풍부한 뉘앙스의 음색을 쏟아 넣는다. ‘거울’은 여러 각도로 빛나는 각 곡이 입체적이다. ‘밤의 가스파르’는 야멸차지 않고 요염하다. ‘소나티네’는 절제된 형식 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쿠프랭의 무덤’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텍스처를 프랑수아의 민첩하고 리듬감과 예민한 색채감으로 돌파한다.
프랑수아의 연주를 듣는 건 가공할 기교 때문이 아닐 것이다. 독특한 감수성과 시적, 회화적 표현은 언제 들어도 살아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은 요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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