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사이에선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시장의 논리만 따르다가 효율적인 자원분배가 이뤄지지 않았고, 엘리트주의와 독과점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화됐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시장주의자들은 이에 반박하지만,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일단은 침묵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제 멘토인 제러드 번스타인은 ‘캔두 이코노미(Can Do Economy)’ 전도사다. 정부가 정책의 역효과를 조정하면서 경제 분야에서 과감한 플레이어로 나선다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캔두 이코노미는 과도한 재정확대, 시장 불균형 등 위험 요소들을 지적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만 ‘큰 정부’의 역할 범위는 기존보다 더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에서 출간돼 화제인 책 《미션 이코노미(Mission Economy)》는 캔두 이코노미와 맥을 같이한다. 저자인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2018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은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낡고 부패한 자본주의를 혁신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선 정부 주도의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문샷(moon shot)’에 비유한다. 미국이 미 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정부의 총체적 역량을 모아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성공적으로 달에 발사했던 것처럼, 정부가 미션을 수립하고 선도적으로 산업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간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미션 이코노미의 핵심이다.
저자는 ‘기업가형 국가(The Entrepreneurial State)’란 개념으로 정부의 혁신적, 모험적 경제정책을 강조해왔다. 이 책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목표주도 정책 수립, 경제 시스템의 재창조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정부의 역할 증대를 위해서는 거시적이면서도 더욱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무작정 재정지출을 늘리기보다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수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을 열어 놓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마추카토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에도 미국 정부가 3조달러 정도의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지만, 불균형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대기업과 금융사들만 배를 불려줬다”고 지적한다. 자원 배분과 관련해선 공익을 추구하거나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정책의 목표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지금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하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기회”라고 강조한다. 오랫동안 ‘할 수 없다(Can’t Do)’에 길들여진 정부와 정책 지도자들에게 담대한 야망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책이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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