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국내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은 전쟁터였다.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등은 매주 두 번씩 콧속과 입속 깊숙이 면봉을 찔러 넣는 검사를 받았다. 환자에게 코로나19를 옮길까봐 퇴근 후 친구는 물론 가족과의 만남도 자제했다. 이곳에 가족을 맡긴 사람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위험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명절에도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먼발치서 눈인사만 해야 했다.
26일 오전 9시부터 요양시설·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지난해 1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확인된 지 403일 만이다. 국내 1호 접종자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고생한 이들 모두가 첫 접종자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다.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26일 전국 각지에서 오전 9시 첫 백신 접종이 동시에 이뤄진다고 25일 발표했다. 첫날 전국 213개 요양시설 5266명의 입소자·종사자가 백신을 맞는다. 백신을 따로 받은 292개 요양병원에서도 내부 일정에 따라 3월 5일까지 순차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 26일 하루 동안 국민(5182만 명)의 최소 0.01%가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되는 셈이다.
지역별로 첫 접종자가 정해졌다. 지난해 2~3월 코로나19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대구에서는 한솔요양병원을 운영하는 부부 의사 황순구(61)·이명옥(60) 씨가 처음 백신을 맞는다. 부산 1호 접종자는 해운대구 보건소에서 백신을 맞는 요양병원 간호사 김순이 씨다. 서울에서도 요양시설 직원이 첫 백신 접종자가 된다. 이들은 전국 보건소나 각 시설 등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다.
이들을 포함해 다음달까지 5803개 기관에서 28만9480명이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 정경실 추진단 예방접종관리반장은 “첫 접종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병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 요양병원과 시설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며 “모두 다 1호 접종자”라고 했다.
접종 초기에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만 백신을 접종한다. 다음달 3일부터 순천향대 천안병원, 양산 부산대병원, 조선대병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도 접종을 시작한다. 이후 8일부터 전국 코로나19 치료 병원에서도 접종한다. 20일 끝내는 게 목표다. 백신 접종자가 접종 이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질병청은 24일 예방접종 관리 시스템을 열었다.
코로나19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해 정부가 목표로 잡은 백신 접종률은 인구의 70%다. 오는 11월까지 이들의 접종을 마치는 게 목표다. 그동안 정부는 수차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건강보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데다 의료 접근성이 높아 주민등록번호 조회 등으로 백신 접종 이력을 쉽게 전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첫 접종 8주 뒤, 화이자 백신은 3주 뒤 두 번째 백신을 맞아야 한다. 두 번째 백신은 처음 맞은 백신과 같은 백신이어야 한다.
다만 돌발변수를 잘 관리하는 게 숙제다. 25일에도 제주도 지역 접종을 위해 배송하던 백신 3900도스 중 2500도스가 유통 적정 온도인 2~8도보다 낮은 1.5도에서 보관된 사실이 확인돼 회수됐다. 양동교 추진단 자원관리반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얼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이들 백신은 보관 온도에서 0.5도 정도 벗어났고 동결되지 않았다”며 “문제없는 것으로 판단해 폐기하지 않고 추후 다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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