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삼성전자와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 가격이 인상된 배경에 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의 과도한 특허 사용료 인상 등 '갑질'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6일 미 CNBC 등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비영리단체 '위치'는 최근 퀄컴에 영국 국민 2900만명에게 총 4억2250만파운드(약 6617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단체는 퀄컴이 지난 50년간 시장 지배력을 남용, 삼성전자와 애플에 대해 특허 라이선스 가격 인상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갑질을 펼쳐 영국 경쟁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퀄컴의 갑질이 제조사의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영국 소비자가 부당하게 피해를 봤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퀄컴은 영국에서 2015년 10월1일 이후 판매된 모든 삼성전자 및 애플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는 영국인에게 5파운드(약 7830원)에서 30파운드(약 4만7000원)를 개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위치는 법원에 요청했다.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제조사이자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기술 관련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업체이기도 하다.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허가가 없으면 어떠한 글로벌 제조업체라도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위치는 "퀄컴은 다른 반도체 업체에 대한 특허 라이선스를 거부했다"며 "제조사가 퀄컴의 라이선스를 획득했더라도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으면 칩 공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퀄컴 대변인은 CNBC에 "이 소송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미 지난해 여름 미국 항소법원이 만장일치로 '퀄컴이 반(反)독점법을 위반했다'는 1심 판결 결과를 뒤집은 이력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퀄컴은 한국과 대만 등 각국 규제 당국으로부터 여러 휴대전화 제조사 및 이동통신사에 '갑질'을 했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19년 서울 고등법원은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업체 등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017년 2월 퀄컴이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뒤 약 3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의 집행 기관인 집행위원회가 2018년 퀄컴이 인텔 등 라이벌들을 제치기 위해 애플을 상대로 자사 칩만 구매하도록 돈을 지불했다면서 약 1348억원(9900만유로)를 부과한 바 있다. 다음해인 2019년에는 10년 전 3세대 통신(3G) 칩셋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퀄컴에게 약 3327억원(2억4400만유로)를 부과했다.
다만 미국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미 연방무역위원회(FTC)는 2017년 퀄컴이 스마트폰 등 무선기기에 사용되는 자사 칩을 구매한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특허권 이용계약을 맺도록 요구한 사업관행이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고소했지만, 지난해 미 제 9 순회 항소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항소법원은 당시 "퀄컴이 경쟁사에 자사의 특허를 허용할 의무는 없다"며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퀄컴이 특허권 이용 계약을 맺도록 요구한 것이 시장경쟁을 해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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