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3대 원유(原油)’로 불리는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북해 브렌트유, 중동 두바이유의 가격은 지난달 일제히 배럴당 60달러를 넘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3대 원유가 모두 배럴당 60달러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년 1개월 만이었다.
최근 원유값 상승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다. 기름이 나는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인 데다 경기가 살아나면 원유 수요량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정치 상황이 불안해진 점도 가격을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안 그래도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11월부터 오름세였는데, 운전자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3대 원유의 명칭은 모두 생산지와 관련이 깊다. WTI는 미국의 서부 텍사스(West Texas)에서, 브렌트유는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 북해(北海)에 있는 브렌트라는 유전에서 생산된다. 두바이유는 중동 아랍에미리트 쪽에서 만들어져 붙은 이름이다. 즉 WTI는 미주, 브렌트유는 유럽, 두바이유는 아시아 일대의 원유 가격을 대표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품질은 미국산 WTI가 가장 좋고, 유럽산 브렌트유가 그 다음으로 좋고, 중동산 두바이유는 다소 뒤처진다. 그래서 가격도 WTI, 브렌트유, 두바이유 순으로 비싼 편이다. WTI는 거의 미국 안에서 소비되지만 세계 최대 선물시장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돼 대량 거래된다는 점 때문에 국제 유가의 상징적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원유의 70~80%를 중동에서 수입해 두바이유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원유는 배에 실어 들여오는 만큼 통상 2~3주쯤 시차를 두고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원유 가격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 결정되진 않는다. WTI와 브렌트유의 경우 거래소에서 사고파는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을 이끌고 있다. 투기자본의 움직임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두바이유는 현물로만 거래되고 있으나 중동의 정세나 산유국의 생산 전략에 따라 높은 변동성을 보일 때가 있다. 기름값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상호작용에 따라 형성된다는 얘기다.
유가 상승의 대표적 수혜자는 정유사와 조선사다. 정유사는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휘발유 등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유가가 오른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석유제품 값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매출과 이익을 늘릴 수 있다. 조선사는 바다 아래 매장된 석유를 뽑아내는 해양플랜트 등의 설비를 만든다. 유가가 높을수록 해양플랜트의 사업성이 좋아지므로 조선사가 일감을 따내기도 쉬워진다. 반대로 기름을 많이 소비하는 항공사와 해운업체에는 악재가 된다. 항공사는 전체 영업비용에서 유류비가 20~30%를 차지하고, 해운사도 연료비 비중이 높은 편이다. 석유에서 뽑아낸 제품들을 원료로 사용하는 화학, 섬유 등의 업종도 사정은 비슷하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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