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모욕한 아이돌은 사라져라."
최근 중국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올라온 방탄소년단(BTS) 관련 게시물을 본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입니다. 해당 게시물은 지난 23일 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남티베트'를 중국이 아닌 인도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쓴 것을 지적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해당 글을 본 누리꾼들은 "더이상 BTS를 보고 싶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습니다. 이 글은 '좋아요'만 32만개에 달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해당 게시물을 보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영토 표시에 대한 것입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재무보고서에 국가별 매출 현황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배경으로 사용한 흐릿한 지도가 중국 누리꾼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지도에서는 남티베트(인도명 아루나찰프라데시)가 인도 영토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중국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인도가 실효 지배하는 곳으로, 수 십년 간 영토분쟁이 있었던 곳입니다. 크고 작은 무력 충돌로 그야말로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지역입니다.
최초로 해당 게시글을 작성한 누리꾼은 "양국 국민 사이에 적대감이 생기지 않도록 지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글로벌타임즈의 보도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분위기 입니다.
앞서 글로벌타임즈는 지난해 10월 BTS가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받자 리더 RM(본명 김남준)의 수상 소감을 문제 삼았습니다. 중국 누리꾼들은 "BTS는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중국인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승리의 역사'로 인식되는 한국전쟁을 '고난의 역사'로 묘사했다고 비꼬며 외교 문제로까지 확대시켰습니다.
영문판 글로벌타임즈를 발행하는 환구시보는 상당히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언론입니다. 관영 인민일보사의 국제신문 성격으로 1993년 1월 창간돼 하루 200만부가 발행되는 신문입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논조로 유명한 기자 출신 후시진(胡錫進·61)이 총편집인으로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기사들이 곧잘 게재됩니다.
환구시보의 이같은 도발은 애국심 고취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최근 중국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치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홍콩 반중 시위 여파 마무리부터 공산당 창당 100주년, 내부 탈빈곤 및 결속 문제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인으로 내부 결속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때 최적의 수단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곤 했습니다.
실제 최근 중국은 내부 단결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와의 국경 분쟁이 대표적인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중국 매체들은 갑작스럽게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 국경 충돌 당시 자국군의 인명 피해와 함께 현장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에는 다수의 인도군에 둘러싸여있는 중국군의 모습과 머리를 다친 중국군이 후송되는 장면 등이 담겼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관련 보도를 여러 차례 읽고 매우 감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빅히트의 실적 보고서가 환구시보의 '먹잇감'이 된 모양새입니다. 그야말로 BTS의 중국 내 이미지를 훼손하고 여론의 몰매를 맞게 하는데 최적의 소재로 활용된 것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이같은 목표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이라는 훨씬 야심찬 비전으로 만들졌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무엇보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공산당을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있는 상태입니다.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환구시보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구호로 내건 시진핑 집권기에 목청을 더욱 키우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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