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공공배달앱인 전북 군산의 ‘배달의 명수’가 코로나19 특수에도 이용자 수, 결제액 등에서 ‘나홀로’ 부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민간배달앱을 중심으로 한 배달시장이 1년 새 두 배 이상으로 급성장한 것과 대조된다. 공공배달앱이 지닌 사업성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28일 군산시에서 받은 ‘배달의 명수 운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중순 정식 출범한 배달의 명수 이용자는 4월 1만4400명에서 5월 2만 명을 넘어선 뒤 10월 3만218명으로 증가했다. 10월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2월 2만611명, 올 1월에는 1만20명으로 급감했다. 결제액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특수에도 월 결제액은 7억~9억원에 머물고 있다. 이마저도 결제 때 지역화폐로 유도한 덕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군산사랑상품권을 사용하면 배달의 명수에서는 이용액의 10%를 현금으로 돌려준다.
민간배달앱 시장은 지난해 ‘언택트 열풍’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작년 1월 약 7500억원에 머물던 민간배달앱 시장은 12월 약 1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배달의 명수의 부진은 가격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한 데다 부실한 사후관리로 경쟁력도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투입으로 일시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이라며 “앱 수수료 논란에도 공공배달앱이 민간배달앱을 대체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배달의 명수가 출시된 이후 정치권에는 ‘공공배달앱 열풍’이 불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배달의 명수를 ‘적극 행정 우수사례’로 꼽기도 했다.
이런 사이 지자체는 앞다퉈 배달의 명수 벤치마킹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의 ‘배달특급’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민간배달앱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갈취하고 부당 이익을 챙긴다”며 지난해 4월 군산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경기도내 공공배달앱 추진의지를 밝혔다. 배달특급은 지난해 말 출시돼 현재 일부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배달의 명수처럼 기존 공공배달앱의 근본적인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대부분의 결제는 또 다른 ‘관치경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역화폐와 연계된 거래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두 달 동안 배달특급 결제 중 70%를 지역화폐가 차지했다. 이 때문에 지역주민 사이에서는 ‘지역화폐가 생길때만 쓰는 앱’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경남 진주 ‘배달의 진주’, 전남 여수 ‘씽씽여수’, 충북 제천 ‘배달모아’ 등도 3월을 목표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광주, 세종 등의 지자체에서도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사업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초 출시된 서울시 ‘제로유니온’, 인천 서구 ‘배달서구’, 인천 연수구 ‘배달이음’, 부산 남구 ‘어디GO’, 충북 ‘먹깨비’, 강원도 ‘일단시켜’ 등도 있다.
공공배달앱을 둘러싸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구시는 최근 공공배달앱 사업을 두고 내부 갈등을 빚었다. “사업성이 없다”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들이 앞다퉈 공공배달앱을 추진하자 대구시도 결국 사업을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자체의 ‘묻지마’ 사업 추진이 이어지자 최근에는 총리실 산하의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가 전국 공공배달앱 실태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황 파악 이상의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자체장들이 ‘표’를 위해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할 일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가맹수수료는 저렴하지만 음식가격이나 배달료에는 차이가 없어 소비자들이 공공배달앱을 사용할 매력을 못 느낀다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막연한 정치적 구호만으로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간에는 작은 것 하나에서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이 벌어진다”면서 “재원과 인력투입, 노력 등에서 공공과 민간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접 지원이나 지역화폐 연계 등 세금 투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자생할 수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각 지자체가 따로 앱을 운영하는것 자체가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나 수단 등에서 민간배달앱에 비해 뚜렷한 한계가 있다”며 “재정 투입 비용에 비해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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